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Oct 01.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VII

가위와 개운


엄지와 검지와 중지가 모여서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자르네


가위질은 반복되는 악수의 다름 아니다.

갈라놓은 듯 보이지만 적절하게 거리두기를 권하고 있다.

분열이 아닌 구분을 가리킨다.

거침없는 나아감이 세상은 본디 두 조각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가위가 지나간 후 그곳은 공정한 폐허가 된다.


가위는 바위와 보자기보다 역동적이다.

의욕이 불타오른 이는 늘 가위를 내민다.

가위를 낼 것 같은 의도를 들키더라도 가위를 낸 자는 마음이 개운해진 것에 만족한다.

가위 이외에는 들이밀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이다.

트로트만 부르는 노래방 자리에서 발라드를 예약한 자의 용기에 가깝다.

그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모두를 전복할 것이다.


가위는 세 손가락으로 하는 유일한 노동이다.

어쩌면 스포츠와 노동 사이에 가위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볼링공을 파지 하거나 야구공을 던지는 투수의 파지가 가위질과 닮았으나 감싸는 것과 짜는 건 다르다.


가위를 다루는 건 손놀림보다 시선에 있다.

가위의 벌어진 날 끝보다 안쪽 날들의 교차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위소리는 결코 엿장수 마음이 제멋대로라는 말이 아니다.

16세기 바로크음악처럼 유연한 여백을 가진다.

아무렇게나 내는 것 같지만 장악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운신의 폭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