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30.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VI

인형과 의혹

인형은 가끔 유혹하며  의혹을 남긴다


의류수거함 옆에 인형이 덩치보다 커다란 웃음을 짓고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지역에 따라 수거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니 옳고 그름은 차치하자)

좁은 입구에 구겨 넣으려다 실패한 흔적이 인형의 한쪽 이마에 남아 있다.

컴컴한 상자 속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인 건지

주인의 좌절이 통쾌해서 그런 건지

인형의 웃음소리는 호방하다.

길을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을 수시로 잡아당긴다.

울음소리가 아니어서 어느 누구도 인형을 안아 주지는 않는다.

인형은 옷의 재료와 비슷하지만 겉만 그러하지 속은 솜이 전부다.

인형은 옷과 베개의 사이에 있다.

인형의 솜은 살이고 피이고 뼈이고 근육이다.

솜의 숨이 죽으면 인형은 버림받는다.

어린 시절 내 곁을 지켜준 인형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형은 인간에게 친근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짓궂거나 늠름하거나 유일하거나-

인형의 존재양식은 껍데기에 있다.

애완동물과 달라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놓여 있는' 것뿐.

인형은 이름 짓기부터 팔다리 움직임까지 주인이 관여해야 한다.

인형에 솜을 넣은 이는 공장 노동자이지만

인형에 숨을 넣는 이는 인형을 품고 있는 자다.

영혼 교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형과 가까워지려면

'무엇인 척 imitation'보다는 '무엇 되기 mimesis'에 치중하는 것이 낫다.


한 가지 표정만으로도 유혹이 가능하다.

어쩌면 단 하나이기에 절실한 것이다.

그다음의 표정은 주인이 짓는 게 인형의 N번째 표정이다.

인형의 말할 수 없음은 특권이다.

심지어 입을 가지지 않은 키티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상상케 하는가.

주인은 키티의 입이 되어주고 싶어 진다.

인형은 의존 존재이다.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결점들을 하나씩 품고 있다.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크거나 몸이 가녀리거나 귀가 없거나 눈이 없거나

대부분 신체에 있다.


인형은 믿을 수 없는 수상함을 주기도 한다.

비슷한 상상은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도 보여준 바 있다.

인형끼리의 소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말이다.

잠시 소홀한 인형들이 어느 날 삼삼오오 손을 잡고 사라진다.

매번 인형의 가출은 신고할 곳이 없어서 애만 태우다 만다.

곁에 있었지만 떠나지 못한 인형에게 묻지만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인형들끼리의 의리는 주리를 틀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인형들의 불문율이다.

이미 떠난 인형들은 전어를 구워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형을 멀리하는 이유는

사물에 유혹당하기보다는 유혹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고

스스로가 의혹의 생산자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인형을 통해 함부로 유혹당했던 지난 순수하고 보드라운 어린 날들이여!

이제는 인형의 배를 갈라 솜으로 온몸의 감각기관을 틀어 막아 딱딱하고 커다란 인형이 되어가는 어리석은 나를 바라보누나!

세상의 인형들아!

이제는 나를 구해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