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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03. 2022

사물과 마음 사이 IX

침대와 충동

부추기거나 잠재우거나

어쩌다 이 사물은 방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다.

하루 중 삼분의 이를 벽에 걸린 액자처럼 있다.

깔고 개는 수고를 덜어주는 덩치 큰 이불이다.

침대에는 아랫목이 의미 없고 자리끼도 마땅찮다.

이곳에서의 자세는 누운 상태가 안정적이다.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은 무언가 불안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풍경처럼 고독하다.

자세가 아닌 그의 마음이 불안해 보인다.

차마 몸을 뉠 자리에서 눕힐 수 없는 그 괴로움.

그것은 잠으로도 누를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하얗게 지새운 환한 방 안 침대에 무릎을 세운 채

그 위에 두 손을 엇갈리게 뻗어 늘어뜨린 그의 시선은 큰 통유리창으로 힘없이 던져져 있다.

의자에 누운 모습이 처량하듯

침대에 앉은 모습은 쓸쓸하다.

본연의 기능을 배반한 사용은 유연해 보이지 않고

대체할 수 없는 혹은 벗어날 수 없는 처절함이다.

왜 이 사물은 나의 에너지가 바닥일 때만 만나는가.

그렇기에 침대와의 만남은 충동을 부추긴다.

불멸에로의 충동

죽음으로의 충동

죽어버리거나 다시 살아보거나!

다행히 작은 부활로 연명하지만 그만큼의 깊이로 명멸하는 상상도 이따금 하게 하는 사물이다.

침대에 누워 가장 평온한 다짐으로 눈을 감아본다.

하루 중 가장 나약하고 비겁해진 몽뚱이가 된다.

거만하고 용감한 몸을 받아주는 침대는 없다.

어쩌다가 교묘한 몸들은 뒤척이다 잠을 설친다.

침대를 운동장으로 여기고 다룬 탓이다.

그대의 침대를 러닝머신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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