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l 26. 2023

나를 보는 눈

스무 번째 글: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그건 어쩌면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면 나는 왜 나를 볼 수 없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나를 볼 수는 있다. 다만 본 뒤에 어떤 식으로든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나를 이리저리 난도질했을 때 그걸 버텨낼 정신력을 갖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쓴 글을 내가 평가한다고 했을 때, 글이라는 작품의 내적인 부분 말고 오히려 외적인 부분에 더 쏠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썼는데, 얼마나 고생하며 썼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에는 그렇게도 냉철한 눈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글에 대한 애틋함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간혹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였을 때 어쩌면 나는, 내가 내 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가 내 글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라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달리 그가 내 글을 하찮게 다루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면 나는 자연스레 격앙될 수밖에 없다. 그건 막상 내가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아무리 마음을 진정하려고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쓴 글을 나만큼 소중하게 여길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최소한 내가 하는 것만큼의 절반이라도 내 글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른다.




종종 글을 쓰다 보면 글 쓰는 솜씨가 탁월한 분들을 보게 된다. 물론 그들이 부럽긴 하지만, 난 그 혹은 그녀의 자질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찬사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 아닌 이상,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한 필력은 그만큼 그(그녀)가 그동안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는 뜻일 테다. 얼마나 많이 좌절했고, 또 얼마나 오래 고군분투했으랴. 그게 마치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양 부러워만 하는 것은,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이 절대 가져선 안 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고맙게도 내게도 간혹 그런 분들이 있다. 내가 쓴 모든 글이 그럴 순 없겠지만, 몇몇 글이 재미있다고 얘기하거나 심지어 나보고 글을 잘 쓴다고 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리석어서 그런 건지, 칭찬을 받으니 그저 좋은 유아적 발상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때면 으레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나 스스로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다는 건 적어도 내 글이 읽는 누군가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맞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능력이다.

'지금 네가 쓴 글은 100점 만점에 48점이야. 어제 46점을 기록하더니 그새 2점 올랐네. 잘하고 있어. 수고했어.'

'두 달 전에 가까스로 60점을 넘기길래 잘한다 싶었더니 최근엔 50점에도 못 미치고 있잖아. 정신 바짝 차리고 좀 분발해.'

이렇게 냉정하게 내가 내 글에 대한 점수를 매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예전에 방영했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가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나면 늘 심사위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제 점수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