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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7. 2024

결국은 파워?

삼백 여든일곱 번째 글: 힘이 있어야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최근 안세영 선수의 폭로와 관련하여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 어린 꿈나무가 그동안 얼마나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그 비합리적인 틈바구니에서 살아왔을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만저만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운동에 전념하는 내내 계란으로 바위를 쳐대는 심정으로 버텨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운동 관련 협회를 떠올리면 축협 즉, 대한축구 협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최근에도 감독 선임 문제와 관련하여 말썽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엔 배드민턴 협회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관리자와 서열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늘 이런 알력과 갈등이 있어 왔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일종의 권력을 형성하고, 확인은 불가하나 정치와 결탁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을 정도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곳은 원래 다 그렇잖아'라고 하며 체념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안세영 선수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 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려 합니다. 만약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또 불운하게도 예선에서 탈락했다면 이번과 같은 폭로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안세영 선수의 성격을 정확히 모르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상태로 폭로했다면 지금과 같은 여론의 힘이나 문체부 등의 움직임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은 모든 건 힘을 갖췄을 때 움직여야 변화가 가능한가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첫 발령을 받았던 2000년만 해도 일선 학교 현장에선 매우 불합리한 점이 많았습니다. '내가 고작 이러기 위해서 교대에서 4년을 고생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런 게 과연 교육인가 하는 생각에 틈 날 때마다 개선점을 얘기하려 하면 그때마다 선배 선생님들이 말리고 나섰습니다.

"이 선생! 그렇게 바꾸고 싶으면 힘을 길러야 해. 지금은 말해봤자 무능한 일개 교사의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말이야."

게 말해서 그렇게 억울하고 불합리하면 '최소한 네가 교장이 되어서 바꿔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일개 학교가 이런 정도라면, 엄연히 권력과 서열이 존재하고, 그 기회를 통해 호시탐탐 정계 진출의 야욕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집단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인 것입니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곳입니다. 항상 사람이 모인 곳엔 권력이 생기기 마련이고, 돈이 움직이는 곳에도 마찬가지로 권력은 형성됩니다. 당연히 권력이 있는 곳에선 지배지와 피지배자가 존재합니다. 더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서열에 서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겪어 왔던 그 많은 설움과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경험을 깡그리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리가 곧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계란으로 바위라도 쳐, 변화를 일궈 내겠다는 안세영 선수의 결심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나, 그나마 금메달을 따고 힘을 얻은 상태에서 폭로할 수 있게 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메달도 못 딴 주제에 현실에 대해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형편없는 선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기회를 빌어 보다 더 민주적이고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협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그것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게 되진 않을 겁니다.


안세영 선수의 폭로는 본인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좁게는 자라나고 있는 배드민턴 꿈나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한 몸짓일 테고, 더 나아가 체육계 전반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불합리하면서도 이미 곪아 터지고 썩어 버린 살을 도려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입니다.


사태의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협회라는 거대한 권력 단체가 힘없는 일개 선수 개인을 매장시키는 일이 없도록 두 눈을 크게 치켜뜨고 봐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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