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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18. 2024

일 없는 청년

삼백 아흔네 번째 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지난 7월, 일을 하지도 않고 심지어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즉 그냥 쉰 청년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무려 44만 3천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75%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예 일하기를 원치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해당 기사글에서는 이들은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도 없는데도 막연히 쉬고 싶었다고 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짚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연령별로 그냥 인구의 수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세~29세: 44만 3천 명
30대: 28만 8천 명
40대: 28만 4천 명
50대: 39만 4천 명


단순하게 계산해 봐도 15세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일은커녕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는 인구의 수가 무려 140만 9천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단순히 양적으로 그 수가 느는 것 외에도 아예 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던 큰 문제라고 합니다. 그냥 쉬었다는 청년들인 44만 3천 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이들이 33만 5천 명, 즉 전체의 75.6%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예 구직 의사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면 사람들은, 그렇다면 그들이 왜 일을 하지 않는지 혹은 아예 일자리조차 구하려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원하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합니다. 왜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15세에서 29세라고 했으니 대략 25세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대학을 진학한다면 졸업할 즈음과 맞물리니까요. 그런데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현상을 보인다면, 과연 그들의 생활비는 누가 충당하느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부모들일 것입니다. 어려서 교육비를 비롯한 각종 생계비를 담당해 왔는데,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가 되었거나 독립할 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부모들은 다 자란 자녀를 여전히 부양해야 하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소비, 그중에서도 가장 과소비를 주도하는 연령대가 20대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고용 불안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청년 개개인에게도 조금은 더 분발하고 생각을 다져야 할 계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 이런 문제로 얘기를 나누었을 때 무분별한 대학 교육도 이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쳇말로 '내가 명색이 대학교까지 졸업(이들 중에는 해외 유학 이력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했는데 고작 이 정도 연봉을 받고, 이런 근무 환경에서 일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술에 배부를 없는데, 너무 시작부터 보다 완벽한 근무 환경과 좋은 연봉을 바라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걸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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