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아흔세 번째 글: 시민의식의 차이일까요?
어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대구와 비교하면 모든 점에서 진짜 도시 같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고 차량도 많아 정신이 없는 곳이긴 했습니다. 다만 딱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있었습니다. 바로 지하철 내의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 실태였습니다. 저는 임산부는 아니지만, 그게 가장 눈에 띌 만큼 서울은 대구보다 앞서 있는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일반화의 지나친 오류에 속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하루 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하철이나 버스 내의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취지는 훌륭한 발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통약자에 속하는 임산부를 먼저 배려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임산부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저출산 시대에 이 작은 일 하나라도 임신을 장려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만한 일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본 적이 없습니다. 자리가 텅텅 비어 있을 때는 두말할 것도 없고, 미어터질 듯 복잡해서 그곳만 자리가 남아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대구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거의 웬만해서는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는 경우를 보긴 힘듭니다. 정작 임산부가 앉아 가면 좋겠지만, 거의 열에 아홉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 가기 때문입니다.
꼭 보려고 해서 본 건 아닙니다. 지하철에 앉자마자 눈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가더군요. 참으로 신기했던 건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분의 자리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자리에 사람이 다 앉아 있었지만, 제가 봤던 그 순간엔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 한 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본 결과를 말하자면 절반 정도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이런 모습은, 대구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에 속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대체로 대구의 지하철에선 항상 임산부 배려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장담합니다만,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거의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하철을 탈 때마다 여성 승객들의 배만 유심히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임산부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경우를 본 건 거의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 사람이 임산부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아니지요. 제 나이 또래를 넘어선 남자분들과 아무리 봐도 가임기는 족히 지난 듯한 연배가 있는 여자분들이 앉아 있으니까요. 게다가 대구에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고 있는지, 제가 보고 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은 누군가의 앞에 서 있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건 제가 임산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배려해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왠지 그 자리 앞에 서서 타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눈치를 주기는 싫으니까요.
이런 것이 시민의식의 차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몇 개의 노선만 타봤으니 아무리 서울의 지하철이라도 다른 노선이나 다른 객차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부 목격한 것만 봐도 그나마 서울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이 어느 정도는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엔가 임산부 배려석에 센서를 도입하자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난색을 표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을 때 어떤 경보가 울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게끔 말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자리가 비어 있을 때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될까요? 한 번 앉은자리는 웬만해서는 비켜주고 싶지 않은 사람의 심리를 감안한다면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서울은 그나마 이 제도가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대구에서도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은 더 성숙한 모습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인터넷에서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