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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Aug 18. 2024

무한대의 빚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 August 2024

하루의 큰 빛을 한껏 즐기려면 내 힘으로는 너무 버거워 빚을 낸다.




인간의 몸을 통해 미끈덩 고통스럽게 나온, 갈비뼈가 다 드러난 삐쭉 키 큰 낯설고 포악한 생명체를 보면서 하루의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고 있는지 불안했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속삭이듯 지나간다. 내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리고 점차 산화하는 시간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끝이 온다. 끝을 바라보고 있다.


안내 / 공간 / 굿즈


공간이 주는 마음의 여유는 그 공간으로 가는 길, 비추는 조명, 어쩐지 불규칙하게 세팅되었다 생각하면서도 안정스러운 테이블과 의자들로부터 시작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지키는 벽을 '목소리예술연구소'가 든든히 채우고 있다.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얀 둥근 테이블과 대강 세모져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테이블은 작가의 진지다. 세상을 맞는 안전지대이고 독자를 환영하는 메시지다.


시 낭송 모임의 시치미에서 끼익 혼자 섰다. 왜 훨훨 날아다니게 두어야 할 매에다 주인 행세를 하는 명패를 달아야 하는 거야? 시치미를 뚝 떼고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듯 작가를 마주했다.


이미 불안하게 채운 첫 번째 단추를 두고 어쩔 수 없는 두 번째 단추를 만지작거리다 떨어뜨렸다.


왜 이 8장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우연에서 진실로'라는 제목이 자꾸 부러져 날카로워졌다. 우연이 어딨어? 그게 다 진실인거지. 신비를 조작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같이 나누자는 따뜻함을 영혼 없이 받아치는 실수가 여러 번 있었다.


작가는 배려했고 독자는 삐딱했다. 작가는 다독였고 독자는 오독했다. 작가는 펜의 색깔이 파랑이든 빨강이든 어떤 거센 밑줄도 환영한다 했지만 독자인 나는 거기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런, 가엾고 무례한 독자라니!


나는 독백과 선언, 고백의 소리의 높낮이가 다르다고 보지 않았다. 내가 히스테리적 찰나 같은 순간들에 골몰하는 연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에 가까워서 그런 건가 꾸역꾸역 방어하며 정당화시켰다.


'그건 소리 볼륨의 문제입니다!'


물리적인 볼륨에서 나는 내 속 깊이를 가늠질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 관한 그 어떤 볼륨도 잘 조절하지 못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건 두려운 확신이다. 그래도 이만큼 살았으니 기적이다.


작가는 8월의 특별함을 무한대 기호로 눕혔다.


8∞8∞∞8∞∞∞8∞∞∞∞8∞∞∞∞∞8∞∞∞∞∞∞8∞∞∞∞∞∞∞8∞∞∞∞∞∞∞∞∞8∞∞∞∞∞∞∞∞∞8∞∞∞∞∞∞∞∞∞∞...


거기서부터 나는 바로 앉았다. 혼자 바닥에 널브러져 뗑깡을 부리던 마음을 접고 듣기를 시작했다. 자기 자신의 것으로 완전하게 만들어 장악하는 순간에 대한 경이를 들으며 내게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가를 광속으로 스캔했다.


광속으로 제 자리에 온다.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면 감동을 다시 찍느라 늦게 돌아올 텐데 나는 광속으로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만큼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건 지금의 숙제다. 나는 숙제를 좋아하니 다행이다.


152페이지의 한 구절처럼 나는 내가 가지 능력과 방식으로 결코 틀리지 않는 바람직한 공부를 할 것이다.


8월의 북토크를 마치고 8장을 다시 읽었다. 정돈되지 않은 내 마음에 보이는 불규칙하게 떠다니는 파편들, 여전히 허공을 휘젓는다. 손 끝에 스쳐 지나가는 작은 퍼즐을 따라간다. 그렇게 계속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려는 힘이 삶이 된다는 거, 안다.


2024년 8번째 북토크가 내 삶의 한편을 채웠다. 무한대로 누웠으니 계속 가는거다.




하루의 큰 빛을 한껏 즐기고 나니 내 힘에 부쳐서 빌렸던 빚이 더 불어났다. 무한대로 불어나는 빚은 갚을 수 없다. 그냥 빚더미를 헉헉대며 올라갈 뿐이다. 시지프에게는 끝이 없지만 내겐 분명 있을 끝이다.


미켈란젤로가 찾던 울트라마린의 갈증... 가능한 한 모든 블루를 상상하며 그중에서 내가 가지고 싶은 코발트블루를 찾아 나선다. 여전히  울트라마린에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파랑을 찾아 그 문고리를 돌려 당긴다.


끼...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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