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스무 살에 친구 중 한 녀석이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한 이틀 다녀보더니 혼자 다니니까 심심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힘들다며 같이 다니자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서 그다지 자주 오지 않는 버스(배차간격이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고, 막상 버스를 타면 대략 1시간 정도 타고 내려서 또 10분을 걸어 들어가야 운전면허 학원에 도착하게 된다.
전혀 운전에 생각이 없던 나는 마뜩잖다고 했지만 녀석은 연일 날 괴롭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요청에 결국 난 같이 다니겠다고 했다. 처음 같이 가던 날 정말이지 힘들어 죽을 뻔했다. 그때는 대구에 지하철이 없던 때라 시간이 많이 걸려도 버스 외에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먼 길을 어떻게 다녔나 싶을 정도로 가는 것 자체가 매일 고역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스무 살이 다 가기 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1종 보통. 따지고 보면 그때 그 친구가 꽤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때 면허를 안 땄으면 나중에라도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상 면허는 땄지만 당장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사실 그것보다는 형편상 차를 산다는 걸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게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만약 그때 내가 차를 살 형편이 되었다고 해도 아마 사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 시대에 대학생에게 차는 그림의 떡이었다. 돈도 못 버는 대학생 주제에 차를 몰고 다니는 걸 좋게 봐주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장장 10년을 장롱 속에 처박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교직 2년 차이던 때였다. 벽지에 발령받다 보니 대중교통으로 통근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1년 반 정도 카풀을 해 보니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결국 면허를 딴 지 10년 만에 난 운전을 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운전할 때는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우선 가장 좋은 점은 기동력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즉시 갈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을 누군가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함께 가는 사람의 스케줄에 일일이 내 계획을 맞춰야 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와의 약속에서 결례를 범하거나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가고 싶은 곳을 못 간 적도 없었다. 내겐 그야말로 새 세상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별 탈 없이 운전을 하던 어느 날 난데없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면 될까, 하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때 하필이면 책이 떠올랐는지는 나조차도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어쨌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동안 손을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녔고, 안 읽고 들고 다니기만 하던 시간들이 줄어들면서 어느 정도는 독서가 습관이 되어 갔다. 처음엔 운전과 독서를 병햄했다. 그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많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로서는 잠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잠을 줄인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중 문득 운전대를 놓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난 천성적으로 게으른 성격이지만, 일단 한 번 마음먹은 건 무조건 실행에 옮기고 본다. 좋다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다면 안 좋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때가 운전한 지 11년째가 되던 해였다. 10년 동안 장롱 속에 있다가 세상에 빛을 본 지 11년 만에 내 운전면허증은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앉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12년째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사실상 지금이 대중교통 통근 역사에 있어 가장 고달프고 힘든 시기이기는 하지만, 이젠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물론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될 때에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또 지금처럼 폭염일 때, 혹은 폭우가 쏟아질 때에는 몸까지 피곤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핸들을 잡지 않았다.
핸들을 잡지 않고 있다는 걸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핸들을 놓음으로써 하루 중 없다가 생긴 4시간 약간 넘는 그 막대한 시간을 활용할 길이 열렸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어떤 것들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