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ul 29. 2023

출간 허니문 X

0412

출간 반추反芻 연재물 <출간 허니문>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소회와 책이 독자에게 전달되어 첫 반응까지를 다루려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인쇄공정의 차질로 신간이 저자의 손에 도착하는 데까지 무려 10회분이 지나버렸다. 더 이상 연재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피로감과 지루함을 고려해 잠정 마무리하고자 한다. 추후에 운이 좋게 리뷰를 만나게 된다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호사好事에 축하해 주시고 함께 기뻐해주신 글동무님들께 감사드린다.


고요하다.

한바탕의 폭풍이 내 주위를 훑고 지나고 난 후의 풍경 같다.

긴 장마는 기나긴 퇴고의 적절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한 해중 가장 뜨겁고 화창한 날에 책을 받아 안게 되어 더 반갑다.

이 좋은 날 아침에 한 일이라고는 파티가 아니라 종합건강검진 예약이다.

지난 한 달 넘게 내 육체를 흔들어놓은 복통과 요통을 알약 9알로는 다스리지 못해 결국 기계를 몸 안으로 혹은 몸을 기계 안으로 넣어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CT검사를 하고, 목요일에는 위대장내시경검사까지 온몸을 훑을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간 식단조절과 함께 몸 안의 음식물들을 서서히 비워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비우는 것은 채우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다.

비우기 위해 먹어야 하는 약물들은 시간과 용량이 정해져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은 대체로 몸에 좋은 음식들이라서 흥미롭다.

어릴 적 아파서 먹었던 약들은 한 두 알이면 오래지 않아 나았던 것 같은데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몸의 구조도 복잡해졌을 리는 없을 테고 아무튼 약들도 복잡하게 많아졌으나 약효는 둔해졌다.

청전기도 배꼽에 대지 않고 진료가 이뤄지고 의사의 시선은 내 몸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옮겨가 더 많이 머무른다.

모니터의 해상도가 나의 몸 그림을 대신하고 그것을 판독하고 해석하는 것이 의사의 본연의 업무가 되었다.

문진이 질병판단의 절대적이라 의사가 빠르게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청기 내리고 홍기 들기'와 같아서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순발력연습을 하게 된다.

의사는 묻는 자고 환자는 답하는 자다.

환자가 물으려고 하면 옆에 서있던 간호사가 나를 낚아채 밖으로 데려가 아이에게 타이르듯 매뉴얼을 읊어준다.

묻는 것만 할 때 권위가 유지된다.

의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보다 말 걸기가 어려워서 아픈 게 죄스럽다.

얼마 전까지 글이 아팠는데 책이 나오니 내가 아프다.

출간 허니문의 끝이 고통, 아픔, 치료 등의 언어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으니 조금만 돌려놓고 펜을 놓아야겠다.

연재물 마지막 이야기가 작성될 무렵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낯선 쿠팡배송직원이 자그마한 누런 박스를 가슴에 안긴다.

출판사로부터 온 따끈한 책이다.

한여름 낮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이제부터 비공식 출간 허니문이 시작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롱면허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