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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8. 2023

출간 허니문 IX

0411

이숲오 장편소설
<꿈꾸는 낭송 공작소>가
입고되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새 책이 출판사에 입고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후 프로세스는 잘 모르지만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으로 전달되어 구매예약을 한 독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배송될 것이다.

책은 다른 제품과는 달리 저자보다 독자가 먼저 완성된 책을 만날 수 있는 공산품이다.

이 느낌이 참 묘한데 마치 파티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게스트가 늦게 파티장소에 도착하는 것 같다.

내가 책의 주인이면서도 넉넉하게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에 여유 있게 무료로 배포할 수도 없는 것이 책이다.

다른 물건들은 사서 사용하라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하는데 내 책을 돈 내고 사서 읽으라고 하면 무언가 부담을 안기는 것 같아서 위축된다.

사는 순간 소비의 재미와 낭만보다는 '독서'라는 노동까지 요구해야 하니 쉽지 않은 제안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귀하다는 시간과 재화를 모두 뺏어야 하니 책 홍보는 녹녹지가 않다.

책은 옷과 비슷하게 감성의 장벽을 감내해야 한다.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데 문학을 읽으라면 내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활자보다는 이미지에 열광하는데 독서를 하라고 하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주제도 소재도 내러티브도 장르도 각가의 취향과 선호도가 달라서 책은 옷을 선물하는 것만큼 조심스럽다.

사이즈가 맞다고 넙죽 주는 옷을 입지 않듯이 한글로 쓰여 있다고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않는다.

입체적인 3차원의 세상에 익숙한 인간에게 평면적인 2차원의 책을 안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책을 여전히 권위 있게 바라보는 것은 책의 존재이유가 첨단의 시대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자체가 아날로그 그 자체다.

단 한 줄도 거저 주어지는 문장이 없다.

작가의 마음을 지나 생각을 거쳐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비로소 겨우 한 문장이 탄생된다.

그렇게 모여진 문장들이 세상과의 원활한 연결을 위한 자기 단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것은 도자기를 초벌 재벌 굽는 과정과 흡사하다.

작가의 내면에서 높은 온도를 견뎌내고 촘촘한 필터를 통과한 이야기만이 허락된다.

정작 쓰기로 한 문장들은 몸에 지워지지 않을 타투를 새길 때만큼 경건하고 유일한 세례를 작가로부터 받은 것들의 총합이다.

때로는 책이 저자의 거대한 명함이기도 하고

때로는 책이 저자의 포개논 악보이기도 하다.

감히 누구의 허락도 없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하나의 문화를 타임캡슐로 만들었다.

21세기에 살았던 무명의 조상이 누린 문화와 예술, 언어를 차곡차곡 책이라는 항아리에 담아서 전하는 특별한 날이어서 더욱 겸허해지고 엄숙해지기까지 하는 나의 두 번째 출간일이다.



|덧말|

출간일이 조금 차질이 생기면서 배송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시장기를 더 부추겨 독서를 더 맛나게 하시라는 큰 그림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이번 소설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예상외로 많으셔서 놀라서 마음이 호들갑입니다. 그래서 두렵기마저 합니다. 그 고마움과 반가움을 의미 있게 돌려드릴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퇴고를 거쳐 출간을 하는 사이 난생처음 허리도 아파보고 추나도 받아보았습니다. 의사는 치료하는 내내 제 허리를 만지며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냐고 물었고 저는 어서 사이클을 타고 테니스를 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침을 맞고 부항을 뜨는 내내 진료실 밖으로 난 창으로 애니메이션에서나 본 듯한 흰 구름뭉치들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열대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낯선 세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데 제 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 다소 우울하지만 오늘만큼은 맘껏 즐기렵니다. 언제 뵙게 되면 붓펜으로 당신이 손수 구입한 제 책의 두 번째 페이지에 사인을 해 드릴게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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