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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26. 2024

이제 와서요?

삼백 아흔여덟 번째 글: 허울 좋은 IT 강국

영국 이동통신업계에서 11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스마트폰을 주지 말라는 경고가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 영국에서 그렇게 말했기에 그 말이 옳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사용에 따른 폐단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전 외국에 안 가봤습니다만, 외국에 가면 정작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이 생각보다도 너무 많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로 가면 이런 점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불편을 겪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건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에 손꼽히는 나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설마 미국에서, 혹은 영국에서 등과 같이 놀란다고 하더군요.


우린 한때 전 국민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모토를 갖고 영어교육을 시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정신 나간 짓이었지요. 그런데 그걸 정부에서 주도했고, 이를 위해 교육과정 자체를 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제 생각에 이견이 있을 순 있겠으나, 전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혹은 원하는 사람만 능숙하게 하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모든 국민이 네이티브 스피커의 역량을 갖추면 마치 금세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IT 업계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글쎄요, 광케이블이 전국 곳곳 깔리지 않은 곳이 없고, 전국 어디에서든 통신망이 원활하게 돌아가서 나쁠 건 없겠지요. 그러나 과연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무리하게 초고속정보화사회를 견인한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요? 누구를 막론하고 전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바보로 만들었고,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각적인 매체들에 빠져들게 만들지 않았나요? 게다가 대화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 세대 간의 차이를 더 극심하게 하지 않았던가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이 말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나라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에 치중한 나머지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건 간과한 결과입니다.


이젠 휴대폰, 일명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있으면 천하무적이 됩니다. 예전엔 누군가와 약속이 있을 때 상대방이 늦으면 그 사람을 생각하거나 그와 함께 할 일을 그려보곤 했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올 때까지 휴대폰만 보면 되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오지 않아도 무방한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식구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거나 외식하러 나갔을 때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화도 서로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카톡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이 생기면 예전처럼 애타게 찾아본다거나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는 게 훨씬 더 빠르고, 솔직히 요즘은 유튜브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폐단들이 죄다 대책 없이 정보통신망을 구축한 탓일 테고, 정보화기기의 사용 연령 제한 등의 법적 조치를 무시한 결과이겠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라는 허세를 부린 만용이 불러온 비극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이런 말이 나온 게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뭘 어떡하겠습니까? 영국 이동통신업계에서 말하는 연령 제한선인 만 11세에 정확히 해당되는 저희 반 학생 24명 중에 23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그런 세상에 말입니다.


모든 문물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사용 기능을 숙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기기를 사용하는 예절이나 마음가짐 등의 일종의 철학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뒤늦게나마 이런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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