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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7. 2024

소녀의 우정

0807

이태리 문학과 프랑스 철학을 나란히 읽는다.


놀라운 것은, 다 알겠는데 하나도 쓰지 못하겠다.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쓰는 것과 아는 것을 쓰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만 우리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아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것인가


우정을 이야기한다고 역자는 소개하지만 그렇지 않다.


화두는 죽음이고 죽음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되었다.


가장 친숙한 이들이 죽어가는 행렬 사이에서 화자는 한 사람의 소중함에 집착하게 되었으리라.

그에게 우정은 하나의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려는 본능의 다름 아니었으니-


익명의 죽음에 더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 소설은 어떤 가치를 던지는가.


가까운 죽음, 근접한 죽음을 겪은 이의 삶에 대한 처절한 입장을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잘 바라본 것들만 잘 견뎌낼 수 있고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부정성은 기어이 반대편의 영토를 구해낸다.


애써 밝은 것만 보려다가 어둠에 잠식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두렵다면 그 대상보다 한 걸음 앞에 서서 두 눈을 바라본다.


두려움은 뒤통수가 정면보다 무서운 이유에서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것의 정면을 본 적이 없다.


돌려세우려면 어깨를 툭툭 쳐야 하는데 매번 어깨를 찾지 못하거나 너무 가볍게 치고 있다.


죽음의 감각이 죽음보다 더 강력한 우정을 불러올 수 있다.


이 소설은 캐주얼한 죽음과 공포스러운 우정 사이에서 성장한 어느 소녀들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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