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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0. 2024

죽음과 소녀

0769

주말 아침에는 기나긴 연주곡이 좋겠다.


현악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현란하게 낚아채는 선율들이 질서 정연하다.


하루가 음악 같으면 얼마나 안전할까.


어김없이 오늘도 연주를 마친 공연장 같을 것이다.


어질러진 마음을 수습하느라 분주하고 뒤죽박죽이 된 일상의 정리로 시간은 흩날리게 될 것이다.


음악이 아니면 불안의 조율을 무엇으로 가능할까.


강물처럼 흐르다가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는 순간마다 음악이 가만히 개입해 진정시킨다.


날카로운 선율은 달콤한 죽음이 되고

부드러운 선율은 간절한 소녀가 된다


소녀의 간절한 소망,

"아, 지나가세요, 제발 지나가세요.
난폭한 자여! 저는 아직 어리니,
제발 내버려 두세요."


죽음의 달콤한 대답,

"아름다운 소녀여,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렴.
나는 난폭하지 않다.
친구로서 온 것뿐이야.
너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도록 하려무나."


네 개의 현악기들이 힘겨운 현실을 부정하다가 분노하다가 흥정하다가 체념하다가 끝내는 기어이 받아들이게 한다.


자신의 운명의 속삭임을 들은 슈베르트가 불안 속에서 만든 이 곡이 정확히 200년 후 나를 위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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