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빠름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임을 함께 공감하는 데에는 우려와 달리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주제를 거침없이 소화해 낸 참석자들의 면면은 여느 때보다 다양했다.
200개가 넘는 나라를 유랑했다는 시애틀에서 온 여행가, 전국의 숲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생리를 인문학적으로 소개한다는 숲해설가, 부산에서 비바람을 뚫고 두 자녀와 함께 온 수필가, 문화공연을 이색적으로 연출하는 지휘자, 소설을 입체적으로 낭독하는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소설 <꿈꾸는 낭송공작소>를 초등학생 원생들과 읽고 토론했다는 영어교습소 원장 등 다채로웠다.
우리는 '느림'을 섭렵한 후 이내 '실패'라는 화두로 넘어가 이 단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성공(?)했다.
작가는 기존의 낡은 의미로부터 단어를 구출하는 이라고 믿어왔는데 북토크 내내 독자들이 작가가 되는 신기한 체험도 겪을 수 있었다.
계획 없는 진행과 맥락 없는 식순은 북토크가 처음인 참석자들의 유연한 통찰을 끌어내는 데 일조한다.
당연히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예측을 보기 좋게 배신하는 것이 월간 북토크의 매력적인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