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일흔네 번째 글: 이제는 허례허식이 되어 가는 제사
오늘이 제 아버지의 기일입니다. 6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솔직히 평소 때는 삶에 치어 생각할 틈이 없다가도 어쨌건 간에 이맘때가 되면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곤 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 그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뭐, MZ 세대라고 하지요? 생각에 있어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 중에 제 자식들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제가 느끼는 MZ 세대는 자기와 털끝만큼의 관련도 없는 일에는 그 흔한 눈길도 안 주는 세대들입니다. 좋게 말하면 시쳇말로 쿨한 종족들이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자기 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몇 년 전엔가 저와 제 아내의 사후, 제사를 지내는 문제에 대해서 얘길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습니다. 죽고 나서도 그런 형식적인 일인 제사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살아 있는 우리 역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제사상을 차려놓으면 흰 소복을 입고 혼령으로 왔다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설령 사후 세계라는 것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마음에선 제 아내와 전, 아이들에게 제사를 물려주지 말자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며칠 후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이 문제에 대해 얘길 해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이들은 우리 두 사람의 제사 문제에 대해서 그리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아이들의 생각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아마도 이런 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산 자는 산 자, 죽은 자는 죽은 자
살아서 버리지 못할 것이 미련이라면, 죽어서까지 가지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 두 사람을 언제든 떠올리고 생각한다면 그것만 해도 기쁜 일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기일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어쩌면 섭섭할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막상 이야기를 그렇게 매듭짓고 나니 마치 뭔가가 해결되기라도 한 듯 시원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려줄 만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삶의 전반을 지탱해 갈 만한 지혜도 물려줄 수는 없지만, 이 허례허식적인 제사라는 격식에서 두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명절 제사까지 1년에 총 4번 있는 이 제사입니다. 어쩌면 100번도 안 남았을 제사를 딱 우리 세대에서만 치르고 죽을 때 가지고 갈 생각입니다. 그런 걸 바라거나 요구할 세상도 아니고, 세대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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