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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03. 2024

경우 없음 / 쿨

사백 여섯 번째 글: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봅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경우가 없어?


대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우린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설령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 봅니다. 그 사람이 왜 저런 말을 제게 하는지, 또 제가 그 사람에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어떤 과실이 있었던 건 아닌지를 말입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간 크게도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경우가 어떠니 저떠니 하는 말을 한다면, 그는 분명 대책 없는 꼰대일 것입니다. 속칭 개꼰대가 되는 겁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제가 꼰대인지 아닌지를 늘 생각하곤 합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꼰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건 볼 것도 없습니다. 고작 이런 일로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꼰대 중에서도 개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요즘 경우 없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최소한 경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나, 아마 저보다 선배인 선생님들이 저를 보셔도 전 영락없이 경우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아무리 멀리 뱉으려 힘을 줘 봐도 그 침은 기어이 제 얼굴 위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가치관이 다양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경우 없음이 어찌 '쿨하다'라는 말로 둔갑하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세상은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지만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합니다. 인간적인 예의범절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거나 함께 공동의 목적을 갖고 달려 나가는 모습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교실공화국입니다. 교실 문만 닫고 들어앉아 있으면 속된 말로 누가 나자빠져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복도가 떠나갈 듯 웃으며 자지러집니다. 이럴 것이라면 동료교사가 무슨 필요가 있고, 동학년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작년엔가 저보다 연배가 많은 어떤 선생님이 속상하다며 한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교직의 대선배로서 한창인 젊은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라며 어떤 말을 해 주면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에게 세상이 변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조언이든 충고이든 어떤 형태가 되었건 간에 선배랍시고 어떤 말을 하면 딱 요런 태세를 보입니다.


됐거든요. 나는 내가 알아서 잘합니다. 그런 조언 필요 없으니 신경 끄세요. 너나 잘하세요.


자기들은 쿨한 세대라 구세대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무엇을 하든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직업인, 그중에서도 기능적 직업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며 워라밸을 추구하는 현명한 세대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어떤 경우에도 전 그들 앞에서 개꼰대가 됩니다.


경우의 있고 없고 하는 문제를 빌미로 제가 억지를 부리는 걸까요? 아니면 경우가 없는 자신의 모습들을 애써 쿨하다는 말로 은폐하려는 걸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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