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글: 이 날씨에 걷는다고?
대프리카. 여름만 되면 무더위를 피해 갈 수 없는 대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Dae-frica. 아마 영어로 적어보면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더운 곳이라고 하면 우선 대구부터 떠오를 정도로 대구는 덥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건 아마도 자연적인 온도 상승에 따른 날씨를 감안했을 때 옛날부터 대구가 가장 더운 곳이었단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도 더 이상은 맞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지금처럼 대기가 오염된 상태, 즉 자동차의 배기 가스나 에이컨 실외기 가동 등으로 인한 온도 상승 정도를 감안한다면 대구에게 더 이상은 대프리카라는 수식어를 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낮 최고기온이 대구를 넘어서는 곳을 찾아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게 있다. 체감 온도. 절대적인 수치로서의 온도가 아닌 사람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온도까지 따진다면, 어느 지역이 다른 곳보다 더 혹은 덜 덥다는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방금 전 45분 동안 밖에 나가서 걷고 왔다. 더위를 무척 많이 타는 '나'이지만, 걸어보니 사실상 걸을 만했다. 물론 무지 더웠다. 등은 셔츠에 달라붙다 못해 달아오르고, 이마와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안경알을 연신 닦아야 했다.
그런데 사람이 점점 이상해지는 건지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무심코 이런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래, 명색이 여름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제맛이지!"
온몸과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큰소리치는 나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곤 한다.
때마침 걸어가던 길의 모습을 폰으로 찍어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조금만 올라가면 편의점이 있어서 거기에서 땀도 식히고 음료수도 한 잔 마시려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뜸 폰부터 들이밀면 치한이나 몰카족(?) 등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고맙게도 길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다. 다들 집 안에만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편의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도중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할 정도로 상쾌했다. 너무 땀을 많이 흘리고 나니 오히려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앉아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려니 천국이 따로 없다. 물론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있으니(난 혼자 있을 때에는 절대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덥긴 하지만, 밖과 비교하면 여긴 그야말로 천국이다.
우리 집은 어제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었다. 뭐, 굳이 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한 번 틀면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끌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참고 또 참다가, 기어이 못 참을 정도가 되면 그제야 에어컨을 가동한다.
'에이, 조금 더 참아볼걸.'
아마도 막상 에어컨을 가동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 번씩 사람들이 대중교통으로 통근하는 나를 보고 묻곤 한다. 덥지 않으세요,라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명색이 여름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제 맛이지요."
제 아무리 더워봤자 여름은 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