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l 31. 2023

팔년지소계

스물다섯 번째 글: 대한민국 교육은 팔년지소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배 선생님들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했다. 정년퇴직까지 12년 남았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12년 6개월이다. 너무도 식상한 말을 한 번 더 사용하자면 초임 발령받은 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이만큼 와 버렸다. 24년을 해왔으니 한 만큼의 딱 절반만 하면 끝이 나는 셈이다.

어떤 경우에 대답하든 물리적인 거리는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 어째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는 12년밖에 안 남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어떤 때에는 12년이나 남았다고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마냥 행복하다거나 보람 있다거나 즐겁다고 생각한다면 어딜 가든 12년밖에 안 남아서 못내 아쉽다고 할 테다. 반면에 교사라는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 보람보다는 힘듦이 부각된다거나 즐거움보다는 심적인 스트레스가 클 때에는 12년이나 남았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요즘 같아선 12년이나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의욕이 꺾이곤 한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해 왔는데, 친구는 새삼 무슨 걱정이냐고 말하지만, 점점 날이 갈수록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 드는 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이런 기분이 든다면, 아마도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정도는 심해질 것이다. 그것도 어쩌면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조만간 특단의 대책이 나올 거라는 전망을 하고 있지만, 아니 그럴 거라고 기대하고 싶겠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교육부에서 늘 그런 역할만 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을 내다보고 도로를 닦고 도시를 계획한다지만, 우리의 교육정책은 대략 10년 앞을 못 내다보는 게 현실이다.

중국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관자』에서,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백 년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꼭 이 말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자고로 교육은 백년지대계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십년지소계이다.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과정은 1945년에 '교수요목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행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약 80여 년이 흐르는 기간 동안, 현행 '2015 개정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 번에 걸쳐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왔다. 단순한 수학적 계산을 해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계획은 통상적으로 8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명실상부한 팔년지소계이다. 이것이 무슨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의 위상인가? 학교 현장 교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의 새로운 개정교육과정이 공표됨과 동시에 차기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돌입한다는 걸 말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년인 2024년도에 '2022 개정교육과정'이 초등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고 한다. 이것만 해도 벌써 11차례 개정이다.


이렇게 11차례나 교육과정이 개정된 이유는 꽤 설득력 있는 데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교육과정이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것이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한 나라의 교육을 주도하는 교육과정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과정이라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상에 그 기조를 맞출 게 아니라, 아무리 시대가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 맞춰야 하고, 그것이 바로 교육철학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 나올 때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고 해서 사람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교육은 새 옷을 지속적으로 바꿔 입음으로써 인간 자체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교육과정과 그때그때 필요한 조치가 쏟아지는 교육정책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쳇말로 대통령이 바뀌고 이에 따라 교육부장관이 바뀌면 교육과정도 바뀐다는 낭설이 있다. 또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교육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구성주의 교육이, 열린 교육이, NIE 교육이, 하브루타 교육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과연 얼마나 획기적인 정책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다만 상당히 회의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겠나 하는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요청에 부응하는 정책이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최소한 가려운 데라도 긁어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그조차도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내게 남은 12년 동안 교육과정은 얼마나 더 바뀔 것인지, 또 현장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갈 듣보잡(?)의 교육정책들은 얼마나 또 쏟아질지 귀추가 주목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가서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