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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7. 2024

성묘 가는 길

사백 열네 번째 글: 1년에 한 번 오는 이 길이…….

차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고령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 계신 곳이 그곳이니까요. 왕복 소요 시간이 대략 1시간 40여 분. 성묘 가서 거기에 있다 오는 시간도 채 10분이 될까 말까, 그래 봤자 두 시간이면 넉넉히 다녀올 길입니다.


여유 있게 나섰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례를 마치자마자 서둘러야 했습니다. 저는 내일까지 쉬지만, 아들은 자대에 복귀해야 합니다. 또 아내는 내일 일하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작 넷뿐인 가족이라도 스케줄이 제각각이니  수 없습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서, 또 부모님을 먼저 보낸 아들로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이럴 때에는 성묘를 건너뛰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땅에 누운 제 양친이 노여워해서 벌떡 일어난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니까요.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미 세상은 변했습니다. 누군가가 제게 '너만 변했다'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가치관과 인식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이 틈을 이용해 들로 산으로, 심지어는 해외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그렇게 못하고 있는 제가 옹졸하다거나 결단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명절엔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고 가족 및 친인척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라는 말을 한다면 그는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갈 자격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전통이니 아름다운 풍습이니 하는 것도 구세대의 잣대입니다. 과연 누가 감히 이것은 옳다 하고 저것은 그르다 할 수 있을까요? 내키는 대로 아무 옷이나 집어 들고 아무에게나 입혀 어울리네 마네를 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일단 차가 막히지 않는 것은 참 좋긴 합니다. 심할 때에는 이 짧은 거리를 가는 데에도 족히 1시간 넘게 소요되기도 하니까요. 별문제 없이 갔다 왔습니다. 차도에는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아 한 번이라도 차량 정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차 뒷자리에 몸을 깊이 묻고 앉아 차창 밖을 내다봅니다. 이 시각에 해외에 간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봅니다. 이참에 내년 설이나 추석 때에는 저도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가볼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외를 과연 그때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습니다. 죽은 이는 후손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야 합니다. 돈은 남기면 환영을 받겠지만, 그 외에는 가는 김에 모두 싸 짊어지고 가는 게 옳은지도 모릅니다. 아들에게 나중에 산에 뿌려달라는 말을 해놓을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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