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이브

0827

항상 바로 직전이 찬란하다

막상 중심에는 고요한 바람이 인다

거대한 설렘은 마주하는 해일 직전에 덮치고 간다

이는 당연하다

한가위는 존재하지만 이브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상상하는 순간 육중해진다

제 무게를 지닌 것들보다 육감적이고 교태스럽다

그래서 이브는 길지도 않은 이브닝을 줄인 말이 아닌 그 자체로 EVE에 더 흡사하다

(이브의 단어는 매혹적인 대칭으로 생겨먹었다. Vacation 또는 Victory와 같이 空과 尖을 상징하는 V를 가운데 두고 Excellent 하거나 Exciting 한 사건들로 둘러싸고 있으니 축제의 가장자리인 이브가 오히려 축제스럽지 않은가)

오! 눈부신 한가위 이브여!

나위와 이브

축제의 중심을 기준으로 이전을 이브라고 부르고 이후를 아담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나 이후는 화장실 다녀온 후와 비슷하게 버림받아 소리소문 없이 잊힌 것이다

이브의 유혹은 어찌나 자극적인지 이를 견디다 못해 나라마저 달도 온전하게 둥글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념도 아닌 날을 공휴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이브는 이렇게 멋도 모르는 이들마저 멋스럽게 노닐게 만든다

'한'은 '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커다란 가위를 구해 신명 나게 놀아보자(짝퉁 왕가위가 있는데 한가위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이다)

정작 추석 당일에는 적막이 흐를 터이니 오늘! 이 자리가 적시 적소이다

신나는 한가위 이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