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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16. 2024

꽈리를 물고

그녀의 N 번째 주차

[영화] 아지랑이좌(Heat Shimmer Theater), 스즈키 세이준 감독, 1981, 2024 재개봉


[no 스포일러는 없다]


높은 주차의 N이 들어간 광장 주차장 이름과는 달랐다. 지하로 들어가며 광장처럼 광활을 믿었는데 굉장히 꼬불한 커브에 후진까지 해야 했다. 


그의 뜻대로 무늬를 넣어 시름시름 바래지며 죽어가며 갈망한다. 몸을 줄이고 들숨으로 가득 조여 파란 눈을 검게 하고 그를 바라봐도 허상이며 허무다. 문드러진 마음, 방향 없는 욕망은 그을린 분홍 양산을 쓰고 죽는다.


인형으로 사는 건 시름시름 황천길


당황의 연속에 낯설어 외로운데 주차할 곳이 없다. 계속 높다가 낮다가 N번만큼 운전대를 급속도 유턴으로 꺾고 또 꺾었다. 채 일 센티도 안될 것 같은 옆구리와 벽 사이에 솟아나는 붉은 피가 가득 차는 상상을 한다.


첫 번째 여인이 슬프게 질투한다. 두 번째 여인으로 가는 길은 스스로 흠뻑 깊이 빠지는 거다. 위협하는 그 뒤에는 도발하며 유혹하며 갈증 하는 그가 온다. 그가 그녀의 꽈리를 받아 물고 곤두박질하며 이루어진다.


이룰 수 없다면 당연한 동반의 길


거의 매번 바퀴가 커브에 닿아 끄윽거리며 들어가는 어느 대학 인터내셔널 하우스 주차장도 이렇게 난감하지는 않았다. 운전하는 건 나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뒤로 뺐다 앞으로 갔다 꿈인가 생시인가 몽롱하다.


그녀를 찾아 헤맨다. 헤매는 순간들을 캐물으며 총구를 겨누는 냉정한 불감증을 앓는 듯한 그가 있다. 따라온다. 뜨거운 죽음으로 몰리면서도 그녀에게 다가감을 의심하지 않는다. 꿈이라도 그렇게, 지옥이라도 그렇게.


그녀를 받아 삼키며 死랑을 이루는 길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솟구치는 영감을 눈앞에 가물거리는 불투명한 형상으로 재해석한다. 사람들의 내면을 또렷한 원색과 자연의 원근감으로 마구 흔들어 댄다.


상징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인다면 영화 보며 철학하다 입 벌리겠지만, 갑자기 불쑥거리는 이해 못 할 미장센의 구성에 부스스 일어나 나가는 관객이 이해되기도 한다.


나는 제대로 철학자도 아니고 나가는 관객도 아니면서, 어정쩡하게 사이에 껴서 몇 번이나 그 속내를 꺼내 읽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대체로 의자에 제대로 박혀 앉아 있지도 못했으며 벌떡 일어나 나오지도 못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수많은 찰나 사이를 예리한 아름다움이 가득 채운다. 관계의 상징과 질투의 색깔, 몽환적인 화려함, 뜬금없는 움직임과 흔들림에 정신을 못 차려 엔딩크레디트가 나올 때 하마터면 크게 소리 지를 뻔했다.


아악!


구슬픈 신파극이 그대로 신파 되지 않고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완성되는 영화다.


그의 다이쇼 로망 3부작의 나머지 두 영화를 표시해 둔다.

지고이네르바이젠

유메지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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