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Sep 15. 2024

고삼은 고삼

사백 열세 번째 글: 高3은 苦3

高3은 苦3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집에 고3이 있으면 세 가지가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눈, 귀, 그리고 입입니다. 뭔가를 봐서 눈이 괴롭고, 그 뭔가를 하며 들리는 소리를 들은 귀가 괴롭습니다. 또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하는 그것을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며 고민하게 되는 입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집에 고3인 딸이 하나 있습니다. 공부를 웬만큼 하기는 하는데,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었던 지난주에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자칫해서 심기를 건드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럴 때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면서 뒤에서 은근히 지지의 눈길을 보내는 게 최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묵묵히 지켜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3이 지금 쉬고 있습니다. 자기도 사람이니 어느 정도의 휴식은 필요하지 않겠나,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어쩐 일인지 쉬고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정작 당사자도 아닌 제가 속이 타들어갑니다.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이 괴롭습니다. 쉬면서 휴대폰을 보는 딸아이의 소리를 들으니 귀가 괴로워집니다.

'고3이잖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공부해야 하지 않겠어?'

말은 해야겠는데, 괜히 말을 꺼냈다가 안 그래도 심기가 어지러울 아이를 건드릴까 봐 그러지도 못하니 입이 괴롭기만 합니다. 高3이 있으니 苦3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실 딸의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놓고 얼마 동안 공부하다 나왔다면 좀 쉴 법도 합니다.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공부만 하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다 알면서도 고3의 부모는 그저 괴롭기만 합니다.


무려 34년 전에 저나 아이의 엄마가 고3이었을 때에도 이맘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짜는 얼마 남았는데, 공부해야 양은 산더미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면서도, 그렇다고 하고 있으려니 다가오는 미래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며칠간의 방황 아닌 방황 끝에 마음을 잡고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공부라는 그렇지 않습니까? 때는 모르지만, 막상 공부를 보면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게 말입니다.


문득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을 확인해 봤습니다. D-60, 딱 두 달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속된 말로 슬슬 똥줄이 탈 때입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저희 딸이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처럼 저렇게 하릴없이 시간만 죽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불안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딸과 저희가 같을 리는 없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엔 그랬습니다. 한 달 정도 남으니까, 그 지긋지긋한 고3 생활이 끝나가서 좋은 게 아니라, 한두 달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어쩌면 똑같을 것입니다. 부모의 전철을, 후회가 막심했던 어느 한 때의 그 기억과 몸부림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부모일 뿐이지 아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는 그 시절을 겪어 봤으니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테지만, 한창 그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가 그걸 알 턱은 없습니다. 편하게 생각해서 후회하고 안 하고, 하는 것도 다 자기 인생이니 스스로 겪어봐야 한다며 내버려 두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집에서 고3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은 딸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천만다행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책_녹색 광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