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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9. 2024

연휴 후유증

2024년 9월 19일 목요일, 낮 최고기온 35도


아니나 다를까, 오늘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났더니 하나 같이 축 늘어졌다. 확실히 연휴가 길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었다. 도대체 연휴 기간 동안 뭘 했기에 그렇게 피곤해하냐고 했더니, 여기저기 놀러 갔다 오느라 그랬다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점점 바뀌어 가는 명절의 풍속을 어찌 말릴까?


실컷 가서 재미있게 놀 때는 언제고 왜 그렇게 늘어져 있냐고 물으니 오늘과 내일이 빨리 지나 다시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5일 동안 신나게 논 여독을 주말에 풀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만 탓할 수 없다는 것이겠다.


오며 가며 보는 선생님들마다 얼굴이 퀭하다. 쌩쌩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눈치는 아이들이 하는 생각을 고스란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니 내가 긴 연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1교시 수업 시작 시간이 되어 국어 책 펴라,라고 했더니 온갖 우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꼭 이렇게 피곤한데 수업을 해야 해요, 선생님 너무 해요, 선생님은 안 피곤하세요, 등등의 별의별 이야기가 다 들렸다. 아무리 봐도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절 무시하고 진도를 나가면 못 나갈 것도 없겠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듣는 이 아무도 없는 수업을 혼자 떠드는 꼴이 되고 만다.


한 3분쯤 고민한 것 같다. 그래, 이럴 때 인심 한 번 쓰지 뭐, 하며 '인 사이드 아웃 2'를 틀어줬다. 역시 우리 선생님 최고, 선생님 멋져요, 등 온갖 아양을 떠는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들으려고 보여준 건 아니지만, 연휴를 마치고 온 교실은 그야말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목에 피 터질 걸 각오하면 몰라도 반응 없는 수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녀석들 말대로 이틀 쉬고 오면 괜찮으려나?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 한 번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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