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나섰습니다. 노트북 장비들을 가방 속에 챙겨 넣어서 말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집을 나서는 목적이 글쓰기라는 것이겠습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할까,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6층에서 지하 1층까지 가는 15초 내외의 시간 동안 다행히도 글감이 떠올랐습니다. 파스쿠찌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주문부터 했습니다. 어디에 메모를 해 놓은 것도 아니니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글감을 까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트북을 꺼내어 부팅이 진행되는 중입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열어 막 로그인하고 있는데 프런트에서 점원이 외칩니다.
"주문하신 아이스 바닐라 라떼 나왔습니다."
제가 늘 다니는 이곳은 주문 후 음료가 나오기까지 꽤 속도가 빠른 곳입니다. 평소에는 좋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주문이 다소 늦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음료를 가지러 갑니다.
오른쪽에 바닐라 라떼 한 잔을 밀쳐 두고 몇 가지 생각난 표현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후다닥 처넣습니다. 이런 걸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요? 딱 글감에 부합하는 일이 지금 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 왼쪽 편에선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부부가 아기를 안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을 직장에 출근시켜 놓고 유모차를 밀면서 커피 전문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고 다니는 사람들을 두고, 맘충이라는 혐오적인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결코 바람직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저는 이 '맘충'이라는 낱말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오늘 쓰려는 글의 소재는 바로 '시니어'입니다.
작년엔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가 아는 메이저급의 커피 전문 브랜드 회사에서 어떤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주제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어떻게 하면 시니어들을 그 회사의 매장으로 오지 않게 할 것인가,였다고 합니다. 마치 그런 사회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즈음 한 커피 전문 매장에선 이런 일도 있었고요. 만석이 된 매장에 한 60대의 여자분이 노트북을 놓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매장 안을 둘러보던 20대의 두 여자가 60대의 그분에게 가서 그랬다고 하지요. 여긴 할머님 같은 사람이 오는 데가 아닌데 자리 좀 비켜 주시면 안 되겠냐고 말입니다. 민망해진 그 여자분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고, 이를 보다 못한 사람들이 와서 그 20대의 여자분들에게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과 올 수 없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느냐고 당신들이 뭔데 이분을 여기에서 나가라 마라 하느냐며 나무랐다고 말입니다.
마치 그런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을지로의 명소들은 4층 이상의 건물에 위치한 곳이 많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 말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다리가 아파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지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 웃지 못할 소리가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어느새 어디를 가든 민폐가 아닌 민폐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희 집 앞에는 파스쿠찌가 있습니다. 드나드는 손님들의 면면을 보면 점점 시니어화(化)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글쎄요, 파스쿠찌 경영자들의 입장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위에 언급한 일화가 발생한 그곳은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저희 동네에도 파스쿠찌 말고도 해당 사건이 벌어졌던 그 매장도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출입하는 데에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제가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평균적으로 출입하는 연령층을 감안한다면 분명 적은 나이는 아닐 것입니다. 내친김에 제가 시니어인지 아닌지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시니어'는 일상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시니어 시티즌의 줄임말로 이해하면 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시니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이를 정의하는 방식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은 시니어를 4단계로 나누는 것이다.
프리시니어: 은퇴를 앞두고 시니어를 준비하는 단계로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소비활동이 활발한 45-59세 연령대
액티브 시니어: 은퇴 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비활동, 사회활동이 활발하며 신체적인 제약이 거의 없는 50-74세 연령대
아더 시니어: 신체적인 제약은 거의 없으나 은퇴 후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력과 가족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며 소비 관여도가 낮은 50-74세 연령대
실버: 노쇠하여 신체적 제약이 있으며 경제력 등에서 가족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75세 이상 연령대
☞ 자료 출처: 나무위키, '시니어' 항목에서 발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제가 '실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프리시니어', '액티브 시니어', 그리고 '아더 시니어'에 모두 해당이 된다는 건 어쩐 일인지 조금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직 은퇴를 하지 않은 상태이니, '액티브 시니어'와 '아더 시니어'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이곳 파스쿠찌는 한 번도 출입문 앞에 '노 시니어 존'이라는 팻말을 내건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해서 점원들이 대놓고 인상을 쓰거나 혹은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면 완벽한 시니어가 아닌 저처럼 어중간한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있는 이곳 1층 매장에 저보다 20여 년은 연배가 더 있어 보이는 두 분이 와서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왜 여기에서 '하필이면'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을까요? 겨우 두 사람이 왔는데도 이 넓은 1층 매장 안이 떠나가라는 듯 시끄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음악 소리보다 그분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최소한 그분들과 제가 앉은자리가 서로 12미터쯤은 떨어져 있는데도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다 들릴 정도니까요.
'노 시니어 존'은 아니지만 저런 무개념의 손님들이 들어올 때면 저 역시 이런 곳도 언젠가는 '노 시니어 존'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두 사람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조금 더 마음 넓게 이해해 보자면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럴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저는 그런 저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두 마리의 물고기가 맑은 물을 온통 흐리는 격입니다. 뭐, 할 수 없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저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해서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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