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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4. 2024

하루의 마무리

오늘은 어제보다 1시간 하고도 반이나 더 늦게 학교를 나섰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그 어디에도 환한 데가 없습니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뿐입니다. 학교 건너편 깊숙한 곳에 있는 대단지의 아파트가 뿜어내는 불빛만 없었다면 어느 시골의 국도변 같은 풍경이었을 겁니다. 고작 이런 걸로 무섬증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발 앞을 비추는 가로등이 몇 미터 간격으로 서 있습니다. 언덕 위아래로 오가는 차량에서 밝힌 불빛이 잠시나마 주위를 밝게 합니다.


정작 저를 긴장하게 한 건 따로 있습니다.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에 버스정류장에 있어서인지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럴 때 버스가 좀 빨리 왔으면 싶지만, 애타게 기다릴수록 더 늦게 오는 것 같은 조바심까지 누를 순 없습니다.


그때 두 마리의 개를 끌고 두 남녀가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보니 운동을 나온 듯한 부부인 듯했습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개만 오고 있었다거나 남자 둘이었다면 긴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둠 속에서의 개도 두려움을 주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대상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8시 반을 약간 넘어서니 왜관역으로 가는 버스가 왔습니다. 버스에 오르고 나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 큰 버스에 기사까지 포함해서 고작 5명, 조용하기 짝이 없습니다. 졸음을 쫓기 위한 것인지 운전기사가 틀어놓은 트로트 음악 소리만 요란할 뿐입니다. 버스 안이 너무 조용해도 이런저런 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데, 저 정도의 소음이라면 오히려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좌석에 몸을 한껏 깊이 묻어봅니다. 딱딱한 감은 있으나, 침대 못지않게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 몸이 피로하기 때문일까요? 하루를 나름 열심히 산 저에 대한 충분하고도 달콤한 보상이 되어 줍니다. 15분 뒤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막 발전을 거듭하다 거기서 딱 멈춰버린, 마치 2~30년 전의 어느 작은 읍내를 돌아다니는 기분입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걸어가는 길 양옆에 무수히 많은 상가가 있지만, 불을 켠 채 영업을 하는 곳보다 불 꺼진 곳이 더 많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길에는 사람보다 차들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띕니다. 사람이 없어서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람이 있을 때에는 사람 때문에 두려울 수 있고, 사람이 없을 때에는 또 그 나름 무서울 수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설적이기만 합니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 집에 들어와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왔습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몸을 따뜻한 물로 적셔주고 이제야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글쎄요, 집으로 와서 마음이 놓여서인지 밖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피로감이 엄습합니다. 마음 같아선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쓰고 잤으면 싶지만, 그건 몇 문장 쳐보고 난 뒤에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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