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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5. 2024

오늘의 마지막 글

밤이 벌써 이윽해져 갑니다.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아파트 1층 앞마당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뭘, 대단한 걸 한 건 아닙니다만, 하루 온종일을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었더니 눈이 피로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저희 반 아이들이 종종 하는 마피아 게임이 떠오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이 말 한마디로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이 얼굴을 책상에 파묻어야 합니다. 당연히 눈도 감아야 하고요. 마피아가 누구인지 정해질 때까지 아이들은 그 어느 누구도 눈을 떠선 안 됩니다. 여전히 저는 그 게임이 재미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간에 저는 아직 얼굴을 책상에 파묻을 수 없습니다. 물론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글이라고 미리 단정 지어 버린 이상, 이 글을 완결해야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자리에 누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흔히 경음악이라고 하던가요? 그나마 노랫말이 없는 음악은 가끔 틀어놓긴 합니다. 노랫말이 있는 유행가나 특정한 장면이 연상되는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O.S.T. 는 절대 듣지 않습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십, 수백 개의 낱말들 속에 그 노랫말이, 혹은 그 특정한 장면들이 끼어들어 저의 글쓰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참 전부터 듣고 싶은 음악이 생겨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라 이 글을 완결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듣고 싶어도 미뤄야 합니다.


내친김에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봅니다. 쓸데없이 나가서 돈을 쓰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아내가 선물로 준 기프트카드로 파스쿠찌에 가서 음료를 시키기만 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것도 엄연히 돈이긴 합니다만, 직접적으로 제 지갑에서 오늘 하루 나간 돈은 없습니다. 그것만 해도 오늘은 대성공입니다. 지독한 구두쇠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같이 어려운 불경기엔 쓸데없이 돈을 쓰고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로써 그 기프트카드도 다 소진했으니, 당분간은 그 자주 가던 파스쿠찌에도 못 갈 듯합니다.


지금 두 아이는 아들 방에서 사이좋게 휴대폰을 하며 쉬고 있습니다. 군에 가 있는 아들은 그렇다고 쳐도 명색이 고3인 딸이 저러고 있으니 부모 된 입장에서 불안하긴 하지만, 공부할 때는 알아서 척척 하고 마는 딸아이의 성격을 믿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괜스레 걱정한답시고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공부 안 하냐는 말을 했다가 아이의 리듬만 흩트린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니까 말입니다.


방금 전 아내의 차가 아파트 안으로 진입했다는 알림 메시지가 울렸습니다. 십수 년 전부터 동네에서 언니 동생하며 알고 지낸 사람들을 만나러 간 아내입니다.


무릇 가족이란 게 그런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모르겠지만, 이미 성인이 되었고 또 한 아이는 성인의 직전까지 와서 그런지, 이젠 각자 자기 팔 흔들며 사는 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아쉬워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게 바로 인생 아니겠나 싶습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언제까지 싸고 키울 수만은 없는 게 자식이고, 부부라는 것도 들끓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돌아보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제 내일 하루만 남겨 두었습니다. 목요일 밤에 든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일부터 나흘간 연휴구나 했었는데, 벌써 사흘이 지나 버렸습니다. 사흘 동안 신나게 글을 썼으니 내일 하루는 좀 슬슬 글을 쓰면서 머리를 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멋진 글은 쓰지 못했지만, 이만큼 썼으면 하루쯤은 농땡이를 피워도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어차피 이 모든 글이 저를 향한 독백이고, 제가 읽을 글이니까요.


하루를 글쓰기와 함께 시작했다가 글쓰기로 마무리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사흘 간의 행복한 항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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