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누가 저를 보면 저는 마치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종 지인들에게서 그 소리를 듣기도 하고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또 지인들이 왜 제게 그런 말을 하는지 이유는 명백합니다. 아무리 봐도 분명 저는 글 쓰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즐기거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지인 중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제게 그러더군요. 글을 너무 쓰고 싶은데, 그때마다 딱 세 가지가 자신의 발목을 붙들더라고 말입니다. 그가 꼽은 세 가지는 바로 친구, 술, 그리고 골프입니다. 어느 날엔가 저보고 묻더군요.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약간 각색해서 한 번 옮겨 보겠습니다.
"선생님은 글 쓰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왜 없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를 취하려면 하나는 버리는 게 인생의 정이치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게 안 되더군요. 늘 친구나 술, 골프가 저를 방해하거든요."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 정말 글을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면 그것들을 놓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선생님 말씀은 제가 아직 글을 쓸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감히 그걸 어떻게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정말 하고 싶은 게 글쓰기라면 다른 건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분과의 대화가 끝난 뒤에 저는 어떤가 싶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 역시 그 세 가지가 모두 제 발목을 붙들 뻔했던 사실은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과감히 떨쳐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그 어떤 것도 글쓰기만큼 저에게 절실하게 다가온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친구가 딱 한 명 있습니다. 누군가가 들으면 에이 설마 하는 말을 하겠지만, 실제로 53년 간 살아오면서 제 옆에 붙여 둔 친구는 한 명뿐입니다. 저는 친구와 교류를 할 때 하나의 원칙을 갖고 그들을 만납니다. 제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친구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는 가차 없이 정리해 버립니다. 가방끈이 길다고 해서 공부 잘하는 게 아니듯, 표면적인 친구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제 남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는 여가 시간이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주중에 혹은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땡돌이 신세입니다. 학교에서 땡, 하면 바로 집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술입니다. 이것 역시 어쩌면 저에겐 천운이 아닌가 싶은데, 저는 1년을 통틀어 마시는 술의 양이 640mm짜리 병맥주 한 병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술을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몸이 술을 아예 받아주지 못하는 체질입니다. 그 때문인지 사실 제가 정리하지 않았어도 술 때문에 제가 일방적으로 정리된 친구도 적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유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만나서 술 마실 일이 전혀 없으니 그만큼 더 제겐 여가 시간이 남아도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골프입니다. 앞에서 제가 말한 딱 하나 있다는 그 친구가 골프를 굉장히 잘 칩니다. 수시로 저에게 같이 골프를 쳐보지 않겠냐고 권유하곤 합니다. 편견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저는 죽을 때까지 골프채를 손에 잡아보지 않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 하는 것 중에는 가장 재미있는 게 골프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지만, 그건 그들의 세계이고 제 세계에서 골프는 제가 할 수 있는 혹은 제가 즐길 만한 유흥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글을 쓰고 싶다던 그분에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을까 봐 차마 얘기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저는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뭘 그리 대단한 글 쓴답시고 유세냐,라고 말한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어떤 것도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하나를 취하려면 하나는 버려야 하는 게 인생인 것입니다. 가령 제가 글도 쓰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다면 둘 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처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술을 먹어야 한다거나, 골프는 골프대로 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쓴다는 발상은, 감히 말하건대 글쓰기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출간을 못한다거나 등단을 못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게 제일 소중한 것 하나를 얻기 위해 나머지는 기꺼이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