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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2. 2024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순간

살다 보니 제게 이런 날도 오네요. 어떤 날이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냐고요? 무려 4시간 전부터 글이라고는 쓰지 않았습니다. 실컷 신나게 글을 쓰다가 문득 글을 쓰기 싫더군요. 기차에서 내려 바삐 집으로 오던 도중이었습니다. 얼른 가서 씻고 글이나 써야지 다짐하며 분주히 발길을 옮기고 있던 때였습니다.


딱히 그럴 만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무작정 생각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오늘은 그만 쓰고 싶다.'

몇 번을 생각해도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지하철 역사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오며, 집에 가서 뭘 하지, 하는 생각보다는 오늘은 그만 쓰고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4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그냥 앉아 있습니다.


오늘은 어쩐 일로 평소에 보지 않던 유튜브 영상도 몇 편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러다 얌전히 서가에 꽂힌 글쓰기 책도 들춰 보았습니다. 집에 있으면 마냥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스타일이 아닌데 오늘은 제가 저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유튜브를 보는 것만큼도 보지 않는 TV까지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가히 이 정도면 꽤 심각한 지경에 놓인 셈입니다. 거의 저로선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괜한 자괴감이나 실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돌아가는 공장 기계도 저녁엔 쉬는 법이라며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사람인 제가 글만 쓸 순 없는 일입니다. 딱 제가 저에게 그렇게 말해줬습니다. 글 안 써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모처럼 몇 시간만이라도 쉬어라고 말입니다. 자주 반복되면 곤란할 테지만, 가끔은 농땡이를 부려도 찮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던 짓도, 어디 마음껏 해보라며 멍석을 깔아주면 쭈뼛대고 마는 게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이참에 푹 쉬라며 허락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배짱이 없어서야 어디 쓰겠습니까?


누군가는 하루라도 책을 잃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습니다. 제가 딱 그런 심정으로 살아온 듯합니다. 하루도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면 손에 가시가 박힐 듯 굴었으니까요. 정말 가시가 박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근 1년 4개월가량 단 하루도 글쓰기를 쉬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 않습니까? 막상 글을 쓰기 싫었다며 이실직고하면서도 결국은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누가 보면 천상 글쟁이인 줄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건가 봅니다. 쓰기 싫다, 쓰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글을 쓰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습관의 힘인 듯합니다. 반복의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닥치고 글쓰기에 전념해 온 덕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는 동안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얼른 한숨 자고 내일부터 또 신나게 달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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