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글을 쓰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실 작가가 아니니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좋은 시절에 고리타분하고 지난한 글쓰기에 빠져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제처럼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글부터 쓰고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저의 평소의 지론인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자가 작가다'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글을 써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작가가 아니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일을 하려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작가는 문자 그대로 글을 짓는 사람을 뜻합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뭔가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앞으로 글쓰기로 생업을 이어갈 계획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뜻합니다. 그것은 인생이나 사랑에 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살아가면서 품게 된 희망이나 꿈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것에 대한 불평불만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속에 담아두고 있으니, 우리는 적절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것을 쏟아내야 합니다.
흔히, 사람에게 귀가 두 개가 있고 입이 하나밖에 없는 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이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 말은 곧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웬만해서는 이젠 그 어느 누구도 남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기 말만 하기 바빠졌다는 뜻입니다.
우린 어쩌면 평소에 늘 남의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납니다. 급기야 사람들은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가 찾아낸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과 같이 글을 쓰는 이들이 많아진 때라면 이런 바람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글을 써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그건 욕심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글쓰기와 책 읽기의 상관관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타인의 말을 듣다 보면 '내 얘기'가 하고 싶어지듯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내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것입니다.
언젠가 극소수의 사람만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세상이 된다면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멋진 글을 쓴다고 해도 읽어 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충분히 그 역으로도 논리가 성립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어지는 한 우리의 글쓰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