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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9. 2024

집을 나서려면…….

257일 차.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잔 탓인지 오늘 많이 늦게 일어났습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 차마 부끄러워 밝힐 순 없지만,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에 나와 앉았습니다. 일단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자느라 두 끼를 건너뛰었으니 배가 몹시 고프더군요. 일단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타 마셨습니다. 이제부터 바삐 서둘러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습니다. 커피 마신 잔을 담그며 보니 싱크대 개수대 안에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요즘은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 세대야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며 당연시되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면 얼마 못 가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세상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쫓아내는 수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고 있으니 정 답답하면 본인의 발로 나가 버리면 그만인 시대입니다.


쫓겨나지 않으려면, 늘그막에 혼자 하릴없이 방바닥에서 뒹굴지 않으려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시간을 들여 설거지를 했습니다. 기분이 개운했습니다. 그런데 그 개운한 기분이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개수대에 음식물 잔류물을 비닐봉지에 담아야 하니, 결국은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비워야 합니다. 음식물은 놔두면 악취만 발생시키니 가능하면 봤을 때 바로 처리해야 합니다. 혹시나 해서 다용도실에 들어가 보니 역시 재활용 쓰레기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게 버린 게 사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언제 또 저렇게 다 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은 거의 자동으로 진행이 됩니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일단 현관문 앞에 가져다 두고 한 번에 나갈 때 처리하려면 종량제 봉투도 묶어서 내놓아야 합니다. 온 집안의 쓰레기를 다 모읍니다. 화장실 두 곳과 두 아이들 방의 쓰레기를 모으니 종량제 봉투의 입구를 잔뜩 당겨 묶어야 할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 찹니다. 이것도 다 돈입니다. 이런 돈을 우습게 여기면 나중에 고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파트 1층 앞마당에 마련된 쓰레기 분리 배출소에 모든 쓰레기를 내놓고 올라오니 또 한 번 기분이 상쾌합니다.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열어 환기를 시킵니다. 청소기를 구석구석 돌려 먼지를 빨아들입니다. 봉에 물걸레를 끼워 이번에는 닦을 차례입니다. 이 봉걸레가 참 애매한 게 무턱대고 힘을 주고 닦다 보면 봉의 손잡이가 휘어 나중에 접거나 길게 늘여 빼려 할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참 아슬아슬할 정도로 세게 닦아야 합니다. 얼룩이 없는 곳은 한두 번 지나가면 되고, 조금이라도 얼룩이 있는 곳은 대여섯 번 밀어서 그 흔적을 지워야 합니다.


다 닦고 나서 열어놓은 창문을 닫으려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제 방에 널려 있는 흰 빨래가 보였습니다. 차곡차곡 걷어 하나하나씩 갭니다. 땅바닥에는 저 나름 매긴 번호가 있습니다. 1번 자리엔 제 것, 2번은 아내, 3번은 아들, 그리고 4번은 딸입니다. 번호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간혹 그걸 헷갈려해서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모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할 만한 일을 찾으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일단 할 일은 다 했습니다.


몸이 안 좋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을 일일이 브리핑하고 나갔다가 오겠다며 보고를 합니다. 수고했다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당연히 기분이 좋습니다. 안 해놓고 제 볼 일을 보러 나가면 당연히 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알아서 해놓고 가면 마음도 편합니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이제부턴 제 세상이라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한 서너 시간쯤은 마음 놓고 글을 쓰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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