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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ug 04. 2023

다 생각 나름

스물아홉 번째 글: 요즘 많이 더우시지요?

우리 집의 가족은 모두 4명이다. 그런데 우리 소유의 차량은 고작 1대뿐이다. 우리 같이 사는 사람들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추세로 보멘 우리 집은 어느 정도 애국자 반열에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이사 나간 우리 이웃 중 한 집은 가족이 5명인데, 차가 5대나 된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말을 하고 지내는 사이인지라 왜 차가 5대나 되는지 그 이유를 물어봤다.

"애들도 다 커서 직장에 다니는데, 직장이 집에서 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차가 5대나 필요하네요."

그 많은 차들을 도대체 어디에 다 주차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십수 년 전부터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아내가 아이들을 픽업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사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그렇게 기르면 안 되는 것일 테지만, 내놓고 키우기에는 너무 불안한 세상이라는 아내의 말에 별 달리 대꾸할 말이 없긴 했다. 그렇다 보니 차를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와 상의를 해야 했다. 그런데 상의하는 게 번거롭다거나 문제가 되진 않았다. 결정적인 어려움은 아내나 나, 두 사람 모두가 반드시 차를 써야 되는 날이 못해도 1주일에 한 번씩은 생기더라는 데에 있었다. 여분의 차를 구입할 계획이 없었으니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민주주의의 꽃은 다수결의 원리에 충실히 따르는 것. 나는 기껏해야 혼자 타지만, 아내는 최소한 둘 이상 타고 다니고, 대체로 세 명이 같이 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큰마음먹고 그때부터 핸들을 놨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르는 지금까지 난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있고, 꽤 적지 않은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다. 신발도 우리 집에서는 가장 자주 갈아치우곤 하는데, 하루 평균 최소 12,000보에서 좀 많이 걷는 날은 20,000보를 훌쩍 넘긴다.


핸들을 놓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다만 이런 날씨엔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12년 동안 걸어 다녀 봐서 안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무더워졌다. 기온 차이는 얼마 안 날지 몰라도 체감으로 느끼는 더위는 그때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버스에서 내려 출근할 때, 퇴근길에 학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이동할 때는 이 이상 고역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뚜벅이족이다 보니 웬만한 거리(대략 2km 이내)는 걸어서 이동하기 때문이다.

맞다. 등에 불나기 일보 직전이다. 햇빛이 와닿는 팔뚝이 뜨겁다 못해 따갑다는 표현도 새삼스럽지 않다. 정말 뜨겁고, 뜨겁다 못해 따갑고, 그리고 따갑다 못해 가려워 미칠 지경이 된다.


점심을 먹기 위해 12시 10분에 밖으로 나간다. 당연히 햇빛이 강렬하다. 허허벌판, 태양을 피할 만한 데도 없다. 너무 뜨거워 걷다 지칠 지경이다. 고작 1km 남짓, 누가 슬쩍 밀면 픽, 하고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이때 기지개를 켜면서 한마디 외친다.

"아! 시원하다. 날씨 좋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날씨가 더워 살짝 맛이 갔나 싶은 눈치다. 그러건 말건 막상 말을 내뱉고 보니 진짜 견딜 만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폭염의 기세가 어디 가는 건 아니겠지만, 땀으로 한 차례 샤워를 하고 나니 오히려 시원해진 느낌이다.


어차피 덥다며 까탈 부린다고 해서 그 더위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닐 테다. 물론 이 더위가 정말 말처럼 시원한 것도 당연히 아니다. 다만, 모든 건 다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겠나 싶다.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곧 시원해진다고 믿고, 오늘도 폭염의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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