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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3. 2023

육필 원고 VS 스마트폰(PC) 글쓰기

두 번째 글: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이것저것 다 뿌리치고 막상 책상 앞에 앉았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연필이 종이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먼저 무엇에 대해서 써야 할지 정하는 것이 순서겠습니다. 당연히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첫 관문인 이 글감 선정은 무난히 넘어가야 할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이것저것 썼다고 해도 각 문장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종이 위에 직접 펜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시대 추세에 맞게 타이핑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도 좋고, 어쩌면 그보다 더 유용한 스마트폰에서의 글쓰기 준비에 돌입해도 좋을 듯합니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쓰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방법에 따라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따위의 공식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원고지나 글쓰기 전용 공책 등을 통해 필로 글을 써도 무방할 테고, 아니면 워드 작업을 해서 파일로 만들어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얼마든지 편집 혹은 저장 작업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다만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무래도 필로 쓰는 것보다는 워드 작업이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용이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선 육필로 직접 쓰는 것은 속도 면에서 너무 더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창 쓸 때는 그다음 문장 혹은 그 다음다음의 문장 정도까지 생각나거나 심지어는 지금 장면이 아닌 다음 장면에 대한 세부 묘사를 어떤 문장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 따위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아니, 나기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어느 한 곳에만 고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면에 사람의 생각이란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떠오른다는 장점도 있지만, 또 그만큼 한 번 떠오른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붙잡아 놓지 않으면 쉽게 날아가 버린다는 맹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딘가에 적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이 점은 육필로 원고를 쓸 때 꼭 잊어선 안 되는 조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미 써 놓은 글들 중에 어딘가(사실은 반드시 어느 특정한 작품의 특정한 자리에)에 꼭 들어가야 할 문장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퇴근길에 혼잡함을 무릅쓰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손엔 메모지도, 그 흔한 볼펜도 한 자루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같으면 당장 스마트폰의 메모장에라도 적었겠지만, 그땐 그런 유용한 기능을 미처 사용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기억해야지, 기억해야지! 꼭 집에 가자마자 바로 그곳에 쳐 넣어야지!'     

하지만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제 머리가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언제 그런 문장을 생각하기라도 했느냐는 듯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동안 그걸 생각해 내느라고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내고 또 머리를 짜내어 보아도 도대체 그게 무슨 문장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념하고 다른 부분을 수정하다 거의 한 달쯤 후엔가 그때 생각했던 좋은 표현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에는 피차일반이라고 하겠지만, 그걸 떠올리려고 몸부림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할 정도입니다.

     

바로 그 경험을 한 뒤로 전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 음성녹음 앱입니다.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녹음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중에 들으면 제 목소리가 적잖게 낯 간지럽기는 해도 어차피 아무에게도 들려줄 일이 없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녹음한 것을 재생하고 그걸 그대로 받아 처넣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잊어버리거나 쓰는 속도가 더디다는 것 외에도 특히 필로 원고를 쓰는 것은 그때그때 글을 수정할 때 여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연필로 쓰지 않는 한 잘못된 부분이 나올 때마다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번 보기 흉하게 두 줄로 죽죽 그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곳을 손대다 보면 나중엔 어느 부분이 진본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올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글을 쓸 때 PC로 작업하는 것이, 혹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편리한 게 사실입니다. 타이핑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겠지만 머릿속에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나마 비슷한 속도로 쫓아갈 수 있는 방법이 PC로 작업하는 것이고, 이 방법은 무엇보다도 글을 수정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수월성과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다 못해 갑자기 생각난 어떤 부분에 새로운 문장을 추가하거나 표현 등을 바꾸려 할 때에도 "찾기" 기능을 이용하면 그다지 헤매지 않고도 정확히 그 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는 꽤 큰 장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정도만 더 비교하자면 필로 쓴 원고는 어떤 식으로든 두터운 노트 등의 형태로 보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원본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면 조금 귀찮더라도 일일이 복사를 떠 놓아야 합니다. 이 방법은 사실상 가제본이라도 작품이라는 형태를 띤 모종의 결과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기쁨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긴 할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쓴 그 작품-특히 처녀작이라면 더더욱-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흐뭇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인가 하는 건 상상 만으로도 그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PC로, 혹은 스마트폰으로 작업한 작품 파일은 일일이 출력해 놓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집이나 직장의 자기 컴퓨터에 저장해 놓아도 되고, 그리고 누구나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USB 메모리 등에 저장해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 있어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바이러스나 악성 코드 등으로 인해 자칫하면 원본 파일을 소실할 우려도 없지 않다는 것이겠습니다.


손으로 쓰든 타이핑을 하든 어쨌거나 궁극적인 목적은 작품 완성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편한 방법을 선택하여 작품 집필 활동에 몰두하면 된다는 얘기가 되는 셈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로 멋진 작품을 쓰고 싶다면 컴퓨터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예를 들어 육필로 글을 쓰지 않는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육필로 원고를 쓰든 PC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든 최종적인 목적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반드시 어느 것이 더 낫다거나 옳은 방법은 없다는 것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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