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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03. 2023

글쓰기와의 첫 만남

만년필 한자루로 시작된 글쓰기

   말과 글을 잃은 채 살았다. 나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모범생이라는 말은 정답을 잘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가정을 하고 거기에 사고를 맞췄다. 정답 찾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대학생이 될 때 즈음부터의 나는 생각을 잃어버리고도 눈치채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 보니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은 경우에 ‘하나의 의견’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같은 삶의 중요한 문제들은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이란 무지막지하게 나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나는 정답이 없는 문제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용기를 내어 대면해야 하는 문제는 스리슬쩍 치워놓으면서 요령 있게 30여 년을 살아왔다. 나는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모범 직장인이었고, 사회적 표준에 맞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도 잘했고, 회사생활에서 요구하는 ‘정답’ 찾기에도 꽤 능했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렇게 살아오며 밀어둔 문제들이 내면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단지 내 안에 뭔가를 꺼내 놓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꺼내 놓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마음을 너무 오래 돌아보지 않아서 오래 묵은 것들이 ‘더 이상은 안된다.’며 소리를 내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던 그때쯤 아내에게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 받았다. 옆구리 찔러 얻어낸 거긴 하지만 아무튼 아내가 선물한 것이다. 어째서 써본 적도 없는 만년필을 사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만의 펜으로 나의 이야기, 나의 글을 써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과 20대 초반의 나는 모든 일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구나. 나만의 답과 나만의 생각이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생각할 틈을 갖지 않고 살아왔으니 나도 나의 것을 한번 꺼내보자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지금에 와서야 덧붙인 해석이며 그 당시에는 펜이 갖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만의 펜이 생기니 뿌듯했다. 글을 써본지 오래되었지만 펜을 샀으니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도 쓰게 되었다. 아무 형식이 없었다.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고, 쓰고 싶은 주제도 딱히 없었다. 단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펜을 사서 기분이 좋다. 날씨가 흐리다. 결혼해서 감사하다.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단순한 글이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쓰는 것처럼, ‘나는 오늘 짜장밥을 먹었다.’ 수준이었다. (나는 어릴때 줄곧 '나는 오늘 ~를 했다.'로 시작하는 일기를 많이 쓰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유치하고 별 것 없어 보이는 글이지만 나의 삶을 기록한 것이라 애착이 갔다. 모든 시간을 기록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남았다. 나만의 펜으로 나의 역사를 기록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만년필을 사용하다 보니 일반 노트에는 잉크가 번져서 나만의 노트도 한 권 샀다. 나의 글쓰기는 점점 나만의 특별함을 갖게 되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시작이었는데, 이 사소한 행위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은 늘어갔고 노트에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쌓였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다. 자기 일기만큼 재미있는 기록은 세상에 없다고.


   행위 위주의 기록을 해오다가, 차츰 행위와 생각 둘을 같이 기록하게 되었다. 지난 기록을 들춰보며 오래 품어온 고민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해결하지 않고 지나온 고민은 다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에 푹 빠졌다. 나는 나를 꺼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던 정답 없는 문제들에 하나씩 대답하고 있었다. 해결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하나씩 펜으로 잡아 노트에다가 기록했다. 글로 쓰고 보니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도 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나만의 답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속 어딘가에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창고가 있었다. 마음속 창고 안에는 내게 울림을 주고 말을 건네오는 스피커가 하나 있는데 그 위에도 먼지며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어서 소리가 나올 수 있는 틈이 없었다. 


   내 만년필과 공책은 마음속 창고의 청소 도구가 되어 주었다. 직면하지 못한 중요한 삶의 문제, 말하지 못한 진심,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었다. 글을 쓰면서 마음속 창고는 정리가 되었다. 중요한 문제의 정답을 꼬집어 찾지는 못했지만 질문을 분류해 두고, 마음의 울림을 전하는 스피커 위도 깨끗하게 치워 두어서 언제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두었다. 


   내게 글쓰기란 나를 꺼내는 도구이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타인이 아닌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남이 찾아놓은 정답을 따라 살게 된다. 정답은 좋은 것일 수는 있으나 공허하다. 꺼내놓지 않고 대답하지 않고 마음의 창고 구석에 처박아둔 많은 질문들은 마음의 창고를 어지럽힌다. 창고가 지저분하면 마음은 병든다. 반드시 갈증과 공허를 경험하게 된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처음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만년필과 노트가 떠올랐다. 내게 글쓰기는 나를 해방시키는 도구이다. 타인의 생각에 매여 있던 나를 풀어 주는 고마운 도구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자유로움이다. 


   여전히 나는 아침 첫 시간에 펜을 들고 나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형식도 없고 주제도 없다. 써내면서 나는 마음을 정돈하고, 나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만년필 한 자루가 불러온 글쓰기가 지금은 다른 사람과 글을 공유하는 글쓰기가 되었다. 지금 내겐 작은 꿈이 생겼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나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작으나마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글로 써보려고 한다.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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