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일 차.
오늘 실컷 자고 일어났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 또 이런 게으름뱅이가 있을까요? 새벽 네 시를 훌쩍 넘어서 잠이 든 건 사실이지만, 오후 5시에 일어났을 때 전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진 걸로 알았습니다. 그 귀한 토요일 하루를 미처 써 보지도 못하고 잠으로 다 날리고 말았으니까요. 어리석어도 이만큼 어리석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평소 통근 시 왕복으로 매일 5시간 걸려서 오고 갈 때마다 피로가 쌓이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저녁에 잠이 들 때 이른 시간에 잠이 드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것이고요. 저녁 7시에 퇴근해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몇 가지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저녁 9시가 되는 게 보통이니, 그때부터 저의 자유시간인 걸 감안한다면 못해도 서너 시간 정도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형편인 것도 사실입니다. 때로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대체로 이 시간이면 글을 쓰곤 합니다. 아, 물론 종종 책을 읽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잠에 드는 시각이 늦어지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새벽 1시를 전후로 잠자리에 드는데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하루의 평균적인 수면 시각은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어쩌면 평일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시에 잠이 들었든, 설령 두어 시간밖에 못 자게 되더라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니까요. 5시 반만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거나 억지로라도 일어나서 움직여야 지각을 하지 않으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친한 지인은 제게, 그렇게 생활하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저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저녁에 제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의 그 달콤함을 포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더 들어 정년퇴직하고 나면, 10시 취침, 4시 기상이라는 저의 로망을 이룰 수 있을까 싶긴 합니다. 대략 11년쯤 남은 그때까지는 그림의 떡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기어이 느지막한 시간에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에 왔습니다. 제 오른쪽 옆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바닐라 라떼 한 잔이 놓여 있고요. 촌스러운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따뜻한 음료에 비스듬히 빨대까지 꽂아 두었습니다. 한창 타이핑하다 생각나면 고개만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기울여 몇 모금 빨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특히 오늘처럼 자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만 이런 날엔 어쩔 수 없이 그 맛있는 바닐라 라떼를 손으로 잔을 든 채 마셔가는 호사를 누릴 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니 몇 초 몇 분의 시간이라도 줄여야 합니다.
들어오면서부터 물어봤습니다. 몇 시에 문을 닫느냐고 말입니다. 11시 반에서 12시쯤 닫는다고 하더군요. 뭐, 그때까지 여기에 있을 리는 없겠지만, 시간적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연결합니다. 참 바쁘기 그지없는 하루입니다.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오늘은 무엇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할까 생각도 해야 하고, 또 점원이 호출하면 음료도 가지러 가야 합니다. 하도 여기를 와서 그런 건지 노트북을 연결하자마자 자동으로 알아서 인터넷을 연결해 주기까지 합니다.
평소 같으면 대략 이때쯤이 제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입니다. 언제 하루를 늘어지게 잤느냐는 듯 다시 제게 돌아온 자유시간입니다. 이제 남은 서너 시간은 또 열심히 달려가 보려 합니다.
매장 내에 흐르는 음악도 귀를 간지럽히고, 간간히 돌아가는 커피 머신의 소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에겐 역시 자유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도 좋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