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일 차.
아침마다 왜관역에서 내리면 제가 버스를 타는 두 곳 중의 한 곳인 남부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아침이면 일단 문을 열지 않고 저녁부터 영업을 하는 모양인데, 그때쯤이면 제가 집에 오느라 바쁜 관계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일식집이 아니겠나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며 가며 저 가게에 제가 눈길을 두는 이유는 바로 가게 앞에 적힌 저 글귀 때문입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저로서는 저렇게 우리말을 해석을 달아놓지 않았다면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겁니다. '이치고 이치에'고 읽는 이 말은, 다도에서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음 사전에서도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그처럼 소중한 인연이라면 현실에서 마주 대했을 때 당연히 후회 없도록 잘 대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겠습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매력적인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쩌면 껌의 단물이 나올 때까지 씹듯 해야 하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래 일본은 다도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일전에 읽었던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를 보면 다도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이 책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의 글을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위의 책 속의 주인공인 센 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인이었습니다. 일본의 다도를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저 간단한 글귀에서 굳이 센 리큐까지 소환하는 이유는 '이치고 이치에'라는 말이 센 리큐에 의해 정립된 말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리큐칠철 중의 한 사람인 야마노우에 소지가 한 말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리큐칠철은 리큐의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의 제자를 뜻합니다. 누가 한 말이건 간에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자꾸만 되뇌게 됩니다.
이치고 이치에, 저는 그동안 살면서 이런 기회를 얼마나 가져 봤을까요? 모든 일이 혹은 제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해 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을 대할 때 혹은 어떤 일을 할 때 과연 저는 일생에 단 한 번 하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일생에 단 한 번 만나게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그녀)를 대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후회나 미련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순간이, 모든 일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제겐 '이치고 이치에'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해 주는 말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