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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6. 2024

이별 여행 1

질문 주제: 당신의 첫사랑은 어땠나요?

1990년 19살, 즉 고3 때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저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았습니다. 그런 제게 어머님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중요한 시기에,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기에 그러고 다녔으니 어머님은 충분히 분개하실 만했습니다. 그때 저와 무척 친하게 지내던 전도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주일학교 교사 직분도 잘 수행했고, 저까지 포함해서 10명인 동기생들도 각자가 원하는 곳은 아니라고 해도 그럭저럭 대학의 문턱을 밟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91년은 그러던 제가 드디어 20살이 되던 해였습니다아무 생각 없이 어느 날 평소처럼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한 여자를 봤습니다저는 새로운 신자 분이신가 보다 했더니 교회 소식에 밝은 동기 녀석이 전도사님의 사촌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교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미용학원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는데 집이 섬 지역이라서 당분간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와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전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친해졌을 때 그때 왜 그렇게 날 유심히 쳐다봤냐고 했더니, 참 볼품없이 생긴 사람인데, 태산을 등에 얹은 듯 자신감이 강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런 제 모습에 반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제 역사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말이지요. 아무튼 그 첫 만남 이후로 저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배가 끝나면 교회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몇 시간이고 주변을 거닐다가 벤치가 있으면 날이 저물 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안 납니다만, 아무튼 미영이는 저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전 자신감이 굉장히 높았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지금도 미지수입니다. 일례를 들자면 친구들 여러 명과 같이 있을 때 한 무리의 여자들을 보면 친구들이 저에게 가보라고 등을 떠밀곤 했습니다심지어 저보다 더 잘생긴 녀석도 많았고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들도 수두룩한데꼭 말을 붙일 때는 저를 보냈습니다뭐랄까그때의 저는 시쳇말로 미스코리아가 와도 주눅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차 있었습니다그때 만났었던 몇몇 여자들도 저보고 그런 말을 종종 할 정도였습니다.

“**씨는 자신감 빼면 시체일 것 같네요. 도대체 그 무지막지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와요?”

어쩜 그렇게도 뻔뻔하면서도 낯짝이 두꺼웠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미영이와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우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게 되었고, 얼마 안 가 대로변에서도 끌어안다시피 하고 다녔습니다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그러던 우리 모습이 교회 성도님들께 발각이 되어 기어이 전도사님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전도사님은 할 수 없이 미영이에게 금족령을 내렸습니다그 와중에도 미영이는 조금의 틈만 있어도 밖으로 뛰쳐나와 저를 만났습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은연중에 로미오에 빙의했고, 미영이는 자신이 줄리엣인 양 믿었던 모양입니다. 우린 마치 비극의 주인공처럼 그 끈질긴 전도사님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던 저는 점점 전도사님의 압력에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실제로 전 미영이와 선을 넘지는 않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사님은 저를 볼 때마다 ‘**미영이는 안 된다상처가 많은 아이다정말 잘해 줄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며 늘 엄포를 놓았고당시 전도사님의 사모님도 틈만 나면 미영이에게 어떻게든 저를 만나지 못하도록 세뇌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저희가 만나는 걸 내버려 뒀다면 솔직히 그냥 교회 동기 사이로 남았을 텐데전도사님과 사모님의 훼방은 안 그래도 시간만 나면 붙어 있고 싶었던 우리 둘을 더 자주 만나도록더 몰래 만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어 달쯤 뒤 드디어 전도사님이 저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아! 우리 미영이와 만나는 건 좋은데, 그래도 교회 근처에서는 손잡고 다니거나 그러지 마라. 사람들이 자꾸 수군거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미영이의 보호자였던 전도사님의 허락을 받고 공개 아닌 공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미영이는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용사(헤어디자이너)가 되려면 반드시 미용학원에 다녀야 했고, 일정한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 미용실에 ‘시다’로 고용되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진 탓에 '스태프'라는 멋진 말로 부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미용실 원장이나 미용학원 원장들은 이런 시다들을 종 부리듯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일 밤 10시 가까이에 교육을 마친 미영이를 만나면 원장과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말이 에피소드이지 그건 거의 착취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전 그때 이름도 없는 시시한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시간도 비교적 많아 언제든 미영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뻔질나게 미용학원을 드나들었던지 복도에 서성이고 있으면 ‘미영아! 밖에 니 애인 왔다나가 봐라.’하는 학원장의 목소리를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시다들 중에 저한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던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미영이가 다니던 미용학원의 동료 수강생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여자였습니다. 이상하게도 현주는 틈만 보이면 저한테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금 생각해 보면 현주는 제게 꽤 노골적으로 접근해 왔습니다아마도 그때에는 ‘친구 애인이라서 나한테 무척 잘해주는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어쨌거나 현주는 조금씩아주 조금씩 저에게 다가왔습니다지금 식으로 말하면 그녀는 밀당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히 그때를 돌아보면 그런 상황이 싫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어쨌거나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 하게 된 연애였습니다아무것도 모르던 때에 만난 사람이었으니 물불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미영이를 만나고 난 후 집에 들여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현주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린 친구의 친구로 만나는 거야알겠지?”

현주는 저를 만날 때마다 이 말을 저에게 했고마찬가지로 너네 뭐냐하며 미영이가 현주에게 물으면 매번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남사친과 여사친이라는 또 하나의 관계 속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인지 전 낮에는 미영이를 만나고, 밤에는 현주를 만나도 그게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미영이도 저와 현주의 관계를 용인하는 분위기였습니다사정이 그렇다 보니 전 굳이 현주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어떤 식이 되었든 미영이는 저의 연인이었고현주는 그런 연인의 친구였으니 제가 굳이 현주를 멀리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나 할까요?


언젠가 현주가 저에게 희한한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들리면 현주가 저에게 삐삐를 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분 안에 서로 전화 통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고 싱글벙글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별 뜻 없이 그렇게 하자,라고 하며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현주는 정말 그 약속을 칼같이 지켰습니다. 라디오나 TV 등에서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들려오면 어김없이 삐삐를 쳤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저와 현주는 만날 약속을 잡곤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원미연 씨의 '이별여행'을 들으면 현주가 생각납니다. 물론 미영이도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마 현주와 저는 단 한 번도 원미연의 노래를 흘려들은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미연의 노래가 나오면 중간에 내려야 했습니다내리려고 문 앞에 서 있으면 어느새 삐삐가 울립니다그러면 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중전화부터 찾습니다심지어는 학교 강의를 듣다가도 잠시 빠져나온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그건 제가 미영이를 만날 때와는 또 다른 뭔가를 느끼게 해 준 일종의 이벤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을 맞아 제 연인이었던 미영이가 고향인 섬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무려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20살에 불이 붙은 관계인 데다 하루도 만나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그건 우리에게 거의 이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미영이와 전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부두가 떠나가라 울었습니다그때는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그냥 이대로 보내면 두 번 다시는 미영이를 연인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배 승선 시각은 점점 다가오고빨리 승선하라는 안내 방송에도 미영이와 저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함께 그 자리에 미영이를 배웅하러 갔던 미영이의 미용학원 남자 동기생 두 명과 여자 동기생 두 명이 저희를 억지로 떼어냈습니다그때 현주가 미영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미영아! 걱정하지 말고 잘 갔다 와! **이는 아무도 못 채어 가게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저의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미영이가 두 달 반 뒤 다시 돌아왔을 때 저는 더 이상 미영이의 연인이 아니었습니다미영이가 없던 그 틈을 타 저를 채간 사람이 바로 현주였기 때문입니다미영이가 고향에 간 두 달 반 동안 전 분명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애인이라는 명목으로, 현주가 우리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미영이가 가기 전에 이미 셋이 함께 와본 적이 있었기에, 현주는 자연스럽게 올 수 있었습니다.


현주는 다소 소극적인 성격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미영이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붙임성이 너무 좋은 탓인지 부모님에게 무척 살갑게 굴었습니다. 심지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수시로 용돈도 챙겨 드렸고요. 일을 쉬는 날은 저희 집에 와서 거의 하루를 살다시피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하고 시장에 장도 보러 다녔습니다. 아마도 그때 엄마는 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현주가 퍽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애인, 미영이의 입지가 저희 집에서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사실은 미영이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미영이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제가 미영이를 사귀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 앞에 나타난 현주를 엄마가 싫어할 리가 없었습니다. 싹싹한 데다 어른한테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저를 너무 좋아하니 엄마로서는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미영이와 시외 통화를 할 때 현주는 제 옆에 있으면서 수화기에 귀를 갖다 댄 채 미영이와 제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가끔은 통화 중 현주가 끼어들어, 미영이에게 ‘은덕이는 잘 있으니 걱정 마라’라는 말을 하기도 해 미영이에게서 괜한 걱정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손 편지를 쓸 때에도 제가 무슨 내용을 편지를 쓰는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고, 그럴 땐 이렇게 써야 한다며, 일일이 훈수를 두기까지 했습니다.

“너하고 현주만 두고 내가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었어. 우리 둘이 통화할 때 끼어드는 현주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어.”

나중에 미영이가 다시 돌아와 어떻게 된 거냐며 저와 마주 앉은자리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저도 현주와 너무 사이가 가까워져 몸을 빼낼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미영이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도 제가 미영이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전 정말 그녀가 저를 친구의 애인으로서만 대한다고 믿었습니다. 연인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어디까지나 남사친과 여사친의 사이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주는 저에게 같이 갈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구 인근에 있는 한 시골이었는데, 친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라고 했습니다. 평소 현주의 말에 따르면, 술 좋아하고 입이 험하며 성격까지 괴팍한 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만은 죽을 때까지 엄마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주는 저에게 부모님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입으로 얘기하지 않으니 저로선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요. 그날의 그 자리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따라갔다가 할머니에게 합격점을 받아 들고 저녁 무렵 할머니댁을 나섰습니다. 대구로 가는 마을버스 막차를 타고 가야 했거든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현주와 저는 막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 제 성격으로는 가지도 않았겠지만, 주변에는 모텔 하나 없었고, 다시 할머니댁으로 돌아가기도 뭣해서 우린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저녁 8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려 7시 30분 동안 우리는 걸었습니다. 그때 현주가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저를 좋아한다고, 사귀고 싶다고 말입니다. 아마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거절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현주의 할머니댁에 가자고 했을 때 따라나서는 일조차도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며칠만 시간을 줘.”

기껏 생각해 낸 대답이 그것이었습니다. 참 어리석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날은, 제가 사람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현주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속칭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었으므로, 전 미영이를 과감히 잘라냈습니다. 하루 한 번씩 하던 전화 통화도 먼저 걸지 않았고,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1주일에 한 번씩 쓰던 손편지도 끊었습니다.


며칠 후 미영이를 배웅하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미용학원 여자 동기생이 저를 보자고 했습니다. 다방에서 만나자마자 그녀는 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현주를 사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현주가 미용학원에서 동시에 두 남자를 꼬드겨 싸움을 일어나게 했던 일을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남자들의 집에서 외박하고 온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싸움이라는 것도 두 남자가 각각 현주와 관계를 가진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녀의 말을 제가 믿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새로 사귀게 되었으니, 제가 사귀는 여자가 그렇게 막돼먹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와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들은 모두가 자취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게 가능했다고 하지만, 전 엄연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저에게 온 본론을 얘기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미영이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내내 울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요즘 저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현주와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입니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까, 그녀는 단 한 마디의 말만 남긴 채 찻값을 치르고는 다방을 나갔습니다.

“나도 그렇게 질 좋은 애는 아니라는 건 알아. 그래도 난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면서 미영이처럼 착하고 순수한 친구를 본 적이 없어.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은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그렇게 착한 미영이를 버리다니 넌 벌 받을 거야!”

저와 만났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미영이에게 분명 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아팠지만, 전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다방 밖에선 저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현주가 있었으니까요.

저를 찾아왔던 그녀가 다방입구에서 현주를 마주치자마자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습니다. 원래부터 네가 그런 애란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친구의 애인을 뺏냐고, 너네들 언제까지 가는지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쥐어뜯을 듯 현주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전 두 사람을 말려야 했습니다.

우린 둘 다 그녀에게서 욕을 한 바가지 듣고 나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욕이 아니라 뺨을 맞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영이에게서 오는 모든 메시지는 그날을 기점으로  뚝, 끊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다시 대구로 돌아오기 전까지 대략 한 달 정도 남았던 때였는데, 미영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나중에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속이 후련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현주와 제겐 걸리적거릴 게 없었습니다. 일단 일일이 만날 때마다 교회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엄마가 너무 좋아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뭘 하든 좋을 때는 바로 좋다 말하고, 싫은 것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화끈한 성격에 제가 잔머리를 굴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아무튼 그때의 우리는 여느 연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평상시엔 현주가 다니던 미용실 앞에서 일이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잠시 만나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현주가 쉬는 날이면 제가 다니던 학교에 와서 강의가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주와 전 질리도록 걸어 다녔습니다. 어디에서 만나든 우린 걸었습니다. 하루에 1시간 걷기는 기본이었고, 가끔 동성로에서 만날 때는 2시간 가까이 걷곤 했습니다. 현주는 한창 일하느라 차를 살 형편이 안 되었고, 저 역시 집에서 '대학생이 무슨 차가 필요하냐'라는 말에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현주는 고모와 같이 살던 집으로 저를 불렀습니다. 현주의 고모와 저는, 오며 가며 아파트 입구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 고모에게 저를 소개하는 자리구나 하며 갔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집엔 현주 혼자 뿐이었습니다. 마침 고모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니, 마음 편하게 있으라고 했습니다. 대뜸 현주는 저와 술을 한 잔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전 지금처럼 술을 못 먹던 때라 병맥주를 사 와 절반을 겨우 마셨고, 현주는 소주 5병과 제가 남긴 술까지 마셨습니다. 아마 11시가 다 되었을 겁니다. 현주도 술에 취했고 저도 가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현주는 너무 늦었다고, 자기는 괜찮다고 하면서 자고 가라며 저를 붙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 일종의 혼전순결에 집착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제 사전에 외박은, 그것도 여자와의 외박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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