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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9. 2024

그 여름의 바다

질문 주제: 수련회와 관련한 추억이 있나요?

진로를 정하기 전에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해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많은 경험을 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어디에 적성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되는 듯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눈치는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제 성적이 되고 안 되고는 관계없이 의대나 법대를 가겠다고 하면 적극 밀어주겠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엉뚱하게도 태권도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과연 저에게 그런 자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태권도를 하며 저는 사는 보람과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마치 지금처럼 글쓰기에 흠뻑 빠져 있던 때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고1 때 처음 다니기 시작한 태권도 도장에서 열심히 수련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관장님이 제게 앞으로 대학은 무슨 과로 갈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흔하게 묻는 말씀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저였습니다. 그분은 저희 아버지와 의형제의 연을 맺은 분이셨으니 당시 제게는 작은아버지 같은 존재셨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태권도를 제대로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남자의 평균치 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은 제가 관장님께 키나 너무 작아서 태권도를 하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야, 임마! 이소룡도 키가 작다."

물론 저보다는 더 컸다고 하셨지만, 키가 크고 작은 건 태권도를 하는 것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고심한 끝에 저는 태권도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제가 다니던 도장엔 수십 명의 수련생들이 있었지만, 전 그때 특별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승급 혹은 승단 대상자가 아니라 체대나 아니면 일반 대학교라도 태권도학과에 진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저는 남아서 두어 시간씩 개별 수련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관장님의 특별 지시를 받은 사범님이 제게 개별적인 지도를 했고, 관장님도 자주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해 여름, 전 태권도 도장에서 실시한 1박 2일 여름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먹고 마시며 (물론 음료수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즐겁게 노는 동안 전 특별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타이어를 허리에 매달고 달리기, 깃발 두 개를 꽂은 구간을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왕복으로 달리기, 종아리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해변을 달리기 등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품새들을 수도 없이 해야 했고, 발차기는 사범님이 'OK'라고 하실 때까지 반복해야 했습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것 같은데도 감히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작은아버지보다는 아무래도 의리로 맺은 작은아버지가 제게는 더 어렵기 때문이겠습니다.


거의 실신할 정도가 되면 한 번씩 주어지는 음료수를 들이켜며 전 제게 주어진 2~30분의 쉬는 시간을 아끼고 또 아껴 써야 했습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또 지옥의 훈련 돌입이었으니까요.


사실 그때는 시쳇말로 몸매 좋은 여자들이 수영복을 입고 지나다니는 것도 여력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간 수련생들이 하면서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습니다. 함께 도장을 다녔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도 으레 저는 태권도학과를 가야 하는 처지라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려 36년 전의 일입니다. 애석하게도 그때 그렇게도 열심히 수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권도학과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그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어떤 추억 같은 건 없었던 수련회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압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만큼 힘든 시기는 없었기 때문에 그때만 생각하면 제가 이겨내지 못하는 고난은 없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그 여름의 바다, 그 수련회에서의 경험은 제게 참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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