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을이 왔습니다. 설마 지금에 와 미련을 남긴 늦폭염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얼마나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이 높아 말이 살찐다는 계절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 좋은 계절인 가을에 사람도 살이 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덥지 않아 너무도 좋은 날씨입니다. 이제는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그게 더는 설레발이 아닐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 주제를 받고 잠시 생각에 빠져 봅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해마다 가을이면 제가 꼭 하는 일이 두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가을에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가장 하기 좋은 시기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 가을에 이 두 가지를 꼭 하겠다는 다짐 삼아 그러면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전 가을이 되면 특별한 독서의 시간을 갖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독서의 계절 아니겠습니까? 늘 읽는 책이 거기서 거기이지 뭐가 특별하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겐 먼 후일에 저와 함께 한 줌의 재가 되어 줄 책이 있습니다. 바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반지의 제왕'이라고 하면 책보다는 영화를 먼저 떠올립니다. 또 장르가 판타지다 보니 정작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네, 맞습니다. 읽어보지 않으면 이 책의 진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사라질 순간에 딱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전 단연코 '반지의 제왕'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만 읽지는 않습니다. 톨킨의 창작 의도, 즉 그의 작품 세계관 속의 시대 순서에 따라 '실마릴리온', '후린의 아이들', 그리고 '호빗'을 읽은 뒤에 마지막으로 '반지의 제왕'을 읽을 계획입니다. 참고로 '호빗'은 1억 부가 넘게 팔렸고, '반지의 제왕'은 1억 5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못해도 2년에 한 번씩은 꼭 이 순례길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거창하게 순례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시리즈들이 무려 4천 페이지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단행본 권 수로는 11권에 달하고요. 작년에 이런저런 이유로 못 읽었으니 올해는 반드시 읽을 듯합니다. 거기에 시간만 허락이 된다면 영화 '호빗' 3부작과 '반지의 제왕' 3부작까지 감상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대망의 순례길은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전 가을이 되면 글을 씁니다. 물론 가을이 아니라도 늘 글을 쓰긴 합니다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글을 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인 건 사실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리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책을 펴 들고 있어도 손색이 없는 환경이 절로 조성이 되는 시기입니다. 다만 주의할 게 있다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그런지 덩달아 잠이 쏟아지기 쉽다는 것이겠습니다. 만약 그것만 이겨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가을은 글 쓰기에 제격인 계절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만 되면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해의 1월부터 여름까지 썼던 소설들을 죄다 꺼내어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다듬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원고를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름하여 신춘문예 열병입니다. 이젠 저도 정신을 차렸는지 더는 그런 부질없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저도 단번에 반할 만하고 주변 사람들도 정말 재미있다고 추켜세우는 소설을 쓰게 되면 모를까, 그전에는 두 번 다시는 신춘문예에 응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쓰기의 본질이 그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설레는 가을이 되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좋은 가을에 하기에 더없이 좋은 독서와 글쓰기의 세계에 빠져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제 마음이 설렙니다. 이러니 말과 함께 저도 살찌게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