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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5. 2024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기념도서관

질문 주제: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좋았던 공공도서관은 어디인가요?

그동안 다녀 본 도서관 중에서 한눈에 제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국립세종도서관입니다. 보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 줄 알았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납니다만 꽤 오래전에 딱 한 번 들른 곳입니다. 넉넉한 실내 공간은 물론 전형적인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탈피한 세종도서관을 보면서 그곳이 바로 신세계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제가 봐온 여러 도서관들은 시대의 변화에는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곳이 허다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막상 가서도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지 않았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오죽했으면 한창 세종시로의 교원의 전출을 장려하던 때 이 도서관 하나 때문에 근무지를 세종시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피력했다가 된통 쓴소리를 들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세종도서관을 본 후유증은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저희 동네에 있는 도서관이나 이동하는 데 시간은 걸려도 마음만 먹으면 갈 만한 도서관을 다니면서 늘 언제쯤 대구에도 멋진 도서관이 들어설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작년 7월 말경 드디어 대구에도 아주 멋진 도서관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누가 보면 마치 그 도서관이 제 소유라도 되는 양 기뻤습니다. 일부러 볼일이 없을 때에도 들르게 되더군요. 명색이 도서관이라는 곳이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도서관은 사실 역사로 보면 1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도서관입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기 전까지는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 시골 학교 건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도서관의 이름은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입니다. 제가 중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그 도서관은 깡패 소굴처럼 불량한 학생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근 5분 거리에 동성로 번화가가 있어서 유흥을 즐기려는 한량들의 중간 집합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환경적으로 얼마나 열악했으면 심지어 어른들 사이에서도 중앙도서관에 가면 불량배가 많으니까 조심하라는 말까지 있었으니까요.


중앙도서관의 건물 모양은 가로가 약간 더 긴 직사각형 모양이었습니다. 그 공간의 대부분을 복도와 화장실 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직사각형 모양을 생각했을 때 자료실과 열람실은 테두리 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따지고 보면 도서관 건물 크기와 비교했을 때 쓰임새 없는 공간이 너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커야 할 열람실이나 자료실 등은 좁아터지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자료실의 장서는 오래된 것들이 너무 많았고, 열람실은 이용료가 저렴한 독서실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외의 다양한 구립도서관이나 사설도서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로서는 굳이 차나 지하철을 타고 중앙도서관까지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중앙도서관이 리모델링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왕 새로 짓게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에 맞는 도서관이 탄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2019년 9월 공사에 착공하면서 도서관은 잠시 인근의 대형 빌딩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2개인가 3개 층을 빌려 도서관을 쓴 기간이 대략 2년 정도, 사실 몇 번 다니면서 너무 불편했습니다. 일단 공간이 이전보다 더 협소해졌고, 필요한 책을 찾을 때에도 꽤 애를 먹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2년을 버티고 참아낸 보람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2023년 7월 28일에 중앙도서관이 재개관했습니다.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이라는 낡은 이름을 버리고 국채보상운동 기념도서관이라는 멋진 이름과 함께 말입니다.


지극히 사견입니다만, 제가 본 새 도서관, 즉 국채보상운동 기념도서관은 국립세종도서관 못지않은 곳이었습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들라면 건물 전체의 공간을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가서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쓸모없는 공간이 없어 보일 정도로 굉장히 잘 디자인된 건물이었습니다. 현대식의 깔끔한 건물 하나 안에 모든 시설이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집으로 비유하자면 일반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개조한 느낌이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계단, 엘리베이터는 물론 구내 카페와 각종 전시실 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다양한 강좌 등을 들을 수 있는 강의실이나 세미나실 등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물 안의 모든 시설들이 효율적으로 잘 배치되어 있다는 걸 느낄 정도로 공간활용도가 뛰어났습니다.

사진 속에서 보다시피 실내는 이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들어오지 못한 공간은 죄다 장서들이 꽂힌 서가가 들어차 있고, 모서리 부분에는 노트북 등을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여유가 많아서 예전처럼 서로 부딪치며 다니지 않을 만큼 쾌적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의 시설이 열악하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거나 책을 읽기가 어렵다고 하면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리모델링한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도서관의 명소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이 도서관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저 역시 재개관한 뒤로는 틈만 나면 이곳으로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합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데, 너무 좋은데 그 좋은 이유를 일일이 열거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 말입니다. 굳이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서 봐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만약 대구에 와서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된다면 국채보상운동 기념도서관에 꼭 한 번 가 보라는 말은 하고 싶습니다.


사진 출처: 서울경제신문, 「대구 중앙도서관 '국채보상운동 기념도서관'으로 재탄생」기삿글의 인용 사진, 202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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