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주제: 당신의 첫사랑은 어땠나요?
아무튼 그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주에게서 삐삐가 왔습니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법도 한데, 그때까지 안 자고 있던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이번 주 울산으로 여행 가자. 물론 당일치기로."
1박 2일로 가자고 하면 씨도 안 먹힐 것 같으니 아예 당일치기라고 현주는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전화를 끊은 뒤 현주에게선 일요일이 될 때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TV와 라디오에서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그렇게 많이 흘러나오는데도 삐삐조차 치지 않았습니다. 전 그냥 괜히 고모가 없는 틈을 타 몰래 저를 집에 부른 것 때문에 고모에게 된통 혼이 나, 며칠 동안 저를 못 만나게 한 건가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여행이 무척 설레었습니다. 현주와는 처음으로 가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주머니 속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마련한 반지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어디 분위기 좋은 데 가서 노래는 못 불러줘도 꼭 그 예쁜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름 꿈에 부풀어 일요일 7시가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주와 만나기로 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약속은 아침 7시였지만, 6시 30분이 채 되기 전에 도착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현주를 기다렸습니다. 누군가는 일찍 가서 뭘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 30분의 설렘과 기다림이 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잘 알기에 늘 약속시간보다 최소 30분은 더 일찍 도착하곤 했습니다.
정확히 5분 정도 남았을 때 현주가 길 건너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걸 봤습니다. 뭐랄까요? 평소의 현주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현주는 주로 노출이 좀 있는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신체 일부를 훔쳐보든 말든 신경도 안 썼으니까요. 그러던 현주가 거의 정장에 가까운 차림으로 나타난 겁니다.
전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하며 생각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러던 순간에도 전 주머니에 든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현주가 신호등을 건너 성큼성큼 걸어서 제 앞에 와 섰습니다. 맞습니다. 어딘가 확실히 달라진 곳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버스정류장에 나온 건 제가 알던 현주가 아니라 빈 껍데기뿐인 현주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주와 저는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제 기억이 맞다면 하필 강력한 태풍이 북상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풍의 영향 탓에 차량도 부쩍 줄었다는 말이 들렸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저희가 갔을 때에는 약간 과장하자면 도시가 정적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현주와 어디 갔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전 어떻게든 반지를 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은 거의 딴 데 팔려있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손을 잡고 온종일 걸어 다녔는데도 현주에게선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나무 작대기 하나를 들고 다닌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잡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손을 잡힌 것처럼 그런 상태로 현주는 내내 옆에서 걸었습니다. 또 하나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분명 그날의 상태로 봤을 때 최대한 밀착해서 다니지 않으면 한쪽 어깨를 비롯해 몸의 절반은 젖을 정도로 비가 왔는데도 현주는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두고 걸었습니다.
사실은 현주에게 물어봤어야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어디 아프냐고……. 하지만 그날 결국 묻지 못했습니다. 같이 다니는 내내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고,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하루가 다 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현주는 자기 고향이 울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꼭 저와 마지막으로 한 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문득 ‘마지막’이라는 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현주는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기억에도 없습니다만, 언젠가 제가 미영이를 만나기 위해 미용학원에 간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현주는 미용학원 원장한테 미용 기술이 늘지 않는다고 하루 종일 혼이 나서 속이 잔뜩 상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는데, 남자 가수 노래 한 곡이 끝나고 곧바로 원미연 씨의 ‘이별여행’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원장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영아, 밖에 니 애인 왔다. 나가 봐라.”
그때 복도 쪽으로 열린 창문 틈으로 제가 보였다고 합니다. 현주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친한 친구인 미영이의 애인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자기가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만 했습니다.
“네가 다니던 미용학원에 잘 생기고 멋있는 남자들 천지잖아? 그런데 왜 하필 내게 그런 마음이 들었어?”
“넌 항상 그랬어. 맞아, 쥐뿔도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그 어딜 가서도 주눅이 들지 않아. 아마 그런 모습이 너를 처음 본 그날에도 보였던 것 같아.”
현주가 왜 원미연의 노래를 들으면 삐삐를 치겠다고 했는지 그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처음 본 그대로 만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더라고. 아니, 아니었다 보다, 하는 생각만 들었다는 말이야. 이제 우린 돌이킬 수 없어.”
미영이와 붙어 다닐 때에는 그렇게 제가 탐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가 가져보니, 자기가 본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 했습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현주와의 일이 저에게 가장 충격을 준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저는 현주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 친구가 옆에서 저를 봤다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도 자신감 있고 당당하던 그 모습은 도대체 어딜 갔냐고 말입니다.
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 누가 떠올랐을까요? 네, 맞습니다. 멀쩡하게 잘 사귀고 있던 저를 기어이 미영이에게서 떼어놓더니 그제와 ‘이젠 네가 싫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말하던 현주의 입술을 쳐다보며, 저는 미영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 결국은 저에게도 상처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얼마 전에 다방에 찾아왔던 미영이의 학원 친구의 말처럼 저는 벌을 받고 만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현주와 저는 비가 더 많이 와서 갇히기 전에 대구로 가자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옆에 앉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딱 붙어 앉지도 않았고, 손조차 잡지 않았습니다. 하긴 이별을 고한 사람에게 손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대구로 오는 내내 현주와 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처럼 라디오에선 두세 번 원미연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때도 전 내내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애꿎은 반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다소 이른 시간에 대구에 도착한 현주와 저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어디 카페라도 가서 커피나 마시자는 말도 저는 할 수 없었고, 점심조차 건너뛴 현주도 어딜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아마 그렇게 30분은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늘 그랬듯 우리에게는 마지막 코스가 남아 있었습니다. 현주를 집에 안전하게 바래다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걷지 말고 버스 타고 가자. 나, 다리 아파!”
저와 있으면서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 다녔어도 단 한 번도 다리가 아프다고 한 적이 없던 현주였습니다. 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현주가 사는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정류장에서 현주 동네까지는 버스로 불과 20분 정도 거리였습니다. 마치 미리 그러기를 작정이라도 한 듯 현주와 저는 버스를 타서도 뚝 떨어져 앉았습니다. 앞쪽에 빈자리를 보자마자 현주는 덜컥 앉아 버렸고, 옆에 서 있으려던 제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던 현주를 보며 저는 뒤에 남은 몇 자리 중의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같은 버스 안에 탔어도 서로 떨어진 거리에 앉았으니 내릴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전 그때 분명히 현주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뒀으면 적어도 미영이는 잃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 그랬다면 너 역시 내게 좋은 친구로 남지 않았겠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저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보스럽게도 전 그 순간에도 주머니 속에 든 반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이내 아파트 입구에 섰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해야 할지, 다른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마음속에 있던 대로 넌 참 나쁜 여자라는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5분만 기다려 줘. 나 너한테 꼭 줄 게 있어.”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마 5층으로 알고 있던 현주의 집에 들렀다 나오는 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손에 꽤 두툼한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습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볼 이유도,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커다란 곰인형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가 사격 게임을 했는데, 거의 만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기어이 쓰러뜨려 제 것으로 만든 인형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현주에게 준 것 중에서는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인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제가 못 알아볼 만한 물건들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습니다.
“이건 엄마가 그때 시장에 같이 갔을 때 나 입으라고 사 주신 거야. 엄마한테는 꼭 죄송하다고 네가 대신 말씀드려 줘.”
단정한 원피스였습니다. 엄마도 그런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핫팬츠만 주로 입던 현주를 보며 엄마가 사 주신 옷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던 현주였습니다. 제가 현주를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엄마에 대한 각별한 정이 있었던 걸 보면, 어릴 적 엄마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자란 탓인 듯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한테 받은 선물은 어떻게 해?”
“굳이 그것 때문에 다시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어. 그냥 버려. 난 괜찮으니까.”
전 그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현주를 붙들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현주에게 주기 위해 맞춘 반지였으니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그 반지는 현주에게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주야, 이거!”
현주는 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딱 그 정도의 통이라면 안에 뭐가 들었을지 바보가 아니라면 알 테니까요. 받자마자 현주는 통을 열었습니다.
“이쁘네. 네가 골랐어?”
“응, 그래. 너 주려고 며칠 전에 샀어. 이건 현주 네 거야!”
현주는 저보고 센스가 늘었다며 잠시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네 성의는 고맙지만, 그래도 이제 이 반지는 내가 주인이 아니야.”
“너 주려고 산 거야. 헤어져도 이 반지만큼은 네가 받아줬으면 좋겠어.”
“아니, 난 받을 수 없어. 차라리 그러면 미영이 갖다 줘.”
현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영이에게 반지를 갖다주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마치 저보고 이제 자기와는 끝났으니 반지라도 들고 미영이에게 가서 싹싹 빌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얼핏 들으니 미영이 아직 너한테 미련이 있는 것 같거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분명 그 반지는 현주가 받아야 할 반지였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만약 끝내 현주가 받지 않는다면 반지가 갈 곳은 딱 한 곳밖에 없습니다.
“잘 가.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멋쩍게 악수를 한 우리는 그 길로 헤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제 기억은 완벽히 끊어졌습니다. 다만 딱 두 가지만 기억이 납니다. 한 가지는 2시간 조금 넘게 그 거리를 현주와 제가 늘 그랬듯 터덜터덜 걸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다 큰 남자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 내어 울면서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아마 눈물이 중앙로쯤까지 왔을 때 멈췄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거의 1시간 반 동안 울면서 왔던 것이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 사람 왜 저러냐, 하며 쳐다보았겠지만, 고작 그런 시선이 신경 쓰였을 리 없었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반지입니다. 그 와중에도 현주의 말처럼 미영이에게 반지를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갖다 드리는 것도 영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반지를 볼 때마다 현주와의 일을 떠올리게 될 테니 말입니다. 현주와 제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 노래, 원미연 씨의 ‘이별여행’처럼 결국엔 이별여행이 되어 버리고 만 울산에서 현주가 태화강을 넋 놓고 바라봤던 것처럼 저 역시 아양교 위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으니 다리 위를 도보로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반지를 꺼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잘 고른 반지였습니다. 제 손가락에 밀어 넣어보았습니다. 들어갈 리가 없었지요. 전 반지를 주먹 안에 그러쥐고 제 시선이 가 닿는 최대한 먼 곳까지 던졌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엄마는 저에게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그렇게 지쳐 쓰러지듯 엎어졌다는 것까지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3주쯤 지났을 때였을 겁니다. 미영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동안 집으로 전화를 하지 않았던 미영이 입장에서는 상당한 용기를 낸 셈이었습니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에 서로 어색해져 전화를 끊기 직전 미영이는 할 말이 있다고 한 번만 만나자고 했습니다.
무슨 기대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얼굴이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서문시장으로 가는 대로변 신호등 앞에서 우린 마냥 서 있었습니다. 한참 가만히 있던 미영이 입을 열었습니다.
“너 그렇게 가고 나서 나 한 달 동안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
“미영아, 미안해. 내가 너한테 무슨 할 말을 하겠니?”
“들었어. 현주와의 일.”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표현이 딱 그때 알맞은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하필 그때 나도 네 옆에 없었고 말이야. 지금이라도 네가 돌아온다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왕복 10차선 정도의 대로변이었을 겁니다. 오고 가는 사람도 많고 차량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곳에서, 그것도 몇 미터만 가면 대구에서 제일 큰 서문시장 근처에서 전 미영이를 가볍게 안아주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을 건넸습니다.
“미영아.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지금이라도 돌아와 달라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어쨌거나 우린 헤어졌어. 넌 네 길을, 나는 내 길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미영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신호등이 바뀌면 바로 건너갈 생각이었고요. 신호등이 언제 바뀔까 싶어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어 바라보는데, 미영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손을 내밀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거기까지여야 했습니다.
“나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미영아. 이런 말 해서 너무 염치없지만, 나도 너 많이 사랑했어.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게 제가 미영이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을 때에도 미영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무려 3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구를 탓할 일이겠습니까? 가장 어리석었고 나쁜 사람은 저였습니다. 친구들은 현주가 정말 나쁜 년이라고 했지만, 그런 꼬드김에 넘어간 건 저였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제가 결국은 가장 나쁜 놈이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현주는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영이는 한 번씩 생각이 납니다. 더군다나 미영이는 지금도 어디에서 살고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고 있어서 큰마음먹고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은 들긴 하지만, 제가 정신이 그나마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될 거라는 걸 잘 압니다.
다만 언젠가 제가 나이가 들어서든, 아니면 병에 걸려서든 죽는 날을 받아둔 상태라면 한 번은 찾아가 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게 찾아간다면 수십 년이 지나 소용없는 일이라고 해도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