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누구도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래서 사람에겐 그만큼 '관계'가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한자 '사람 인'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맞대고 선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할까요? 최소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또 의지가 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우리네 삶의 전부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그 외의 장소에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역할에 걸맞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말은 곧 각각의 관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말이나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모든 관계가 우리에게 원만하게 이루어지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체로 사람의 일이 그러하듯 결코 그러한 관계만 존재할 순 없는 일입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니까요.
다양한 관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저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이제 더는 그런 저의 태도가 미덕이 아님을 알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넓고 할 일이 많듯, 세상은 넓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기에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인연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거나 끊으려 할 때 우리는 각자의 호불호에 따라 판단합니다. 누구에게나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대체로 그것들은 한두 가지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생각을 떠올려 봐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가 넘으니까요. 물론 그걸 고스란히 뒤집으면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 대한 제 호불호의 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저는 삶에 대해 혹은 인간에 대해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삶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철학이 없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러면 너는 그런 삶의 철학이 있느냐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의 철학은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저를 봤을 때 겉으로 발현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습니다.
이걸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뭔가를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저는 타인에게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가령 뭔가를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제 주변에 한 사람 있어서 저는 그(그녀)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만, 그(그녀)에게 저는 어떤 의미로 여겨질까 하는 것입니다. 그(그녀)의 인생에 제가 그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 역시 어쩌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할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저는 제게 있어서 아닌 사람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가차 없이 그(그녀)를 제 인생에서 밀어내 버립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성립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관계 속에서 과감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거나 직장의 상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냉정하지만 저는 그럴 때 그(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그(그녀)도 저를 없는 사람 대하듯 할 것이고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건 제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와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을 이해하고 맞춰가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다만 모든 관계 속에 놓인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니다 싶은 관계는 일찌감치 과감히 청산하는 게 현명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