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름은 말입니다.
질문 주제: 이름을 둘러싼 일화가 있나요?
제 이름은 이**입니다. 일단 이름이 조금은 특이한 편이라 그런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로부터 종종 놀림을 받곤 했습니다.
"야! 이름이 **이 뭐냐? 나 봐. 남자답고 이름도 멋지지 않냐?"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대개 철수, 영수, 영철, 현수 등의 이름을 가진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평범한 이름을 가진 녀석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만 해도 부모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면서도 남자다운 이름으로 짓지 왜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지었냐고 말입니다. 네 이름은 결코 이상한 이름이 아니라고, 깊은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린 제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는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영 할 것이 없으면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을 펼쳐놓고 놀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눈에 잘 안 띕니다만, 전화국에서인가 집집마다 한 권씩 배부한 탓에 어딜 가나 있었거든요.
그때 우리는 자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찾곤 했습니다. 묘하게도 흥미로웠던 동명이인 찾기 놀이에서 저는, 단 한 번도 제 이름과 세 글자가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을 찾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는 이름 두 글자만 같은 사람을 찾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제 이름이 더는 이상한 이름이 아니라며 마음을 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제 이름을 어딘가에 가서 소개하면 절에서 작명한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가령 부처님의 **이 어떻다,라는 식으로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은 아버지께 제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를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부친과 의형제로 지내고 있던 어떤 목사님이 지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얼마 안 있어 그분을 직접 뵈었는데, 하나님의 **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가 한 2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어도 제 이름은 아마도 기쁨, 영광, 하부(하나님의 부름) 같은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더는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이 이상한 이름도 제 옷처럼 느껴졌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언젠가부터는 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곤 했습니다. 오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해서 알고 지낸 사람이 딱 세 명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박**, 김**, 그리고 조**입니다. 이**이라는 사람을 찾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습니다. 혹시 눈치를 채셨는지요? 그들은 모두 여자입니다. 한 명 한 명씩 알게 될 때마다 제 이름이 여성스러운 이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를 옮긴 첫 해가 되어 담임발표가 나면 으레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은, 제 이름만 보고는 새 담임선생님이 여자일 거라고 단정했다고 합니다.
"야, 야. 우리 선생님 남자야 남자."
당돌했던 한 아이가 다른 반 친구에게 자랑삼아 얘길 하더군요. 자기 엄마가 한 번은 남자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뜻대로 안 되어 속상하다고 했다 합니다. 쉬는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로 제가 남자였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늘 여자로 살아왔는데 그 아이에게서 비로소 제가 남자라는 걸 인정받은 느낌이랄까요?
이미 오십 년을 넘게 이**으로 살아왔습니다. 여전히 제 이름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이제 와 제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뭘 어찌해볼 도리는 없을 겁니다. 남은 인생 제 몸에 딱 맞는 이 이름으로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