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머니
사백 서른네 번째 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돈
어찌 생각해 보면 오늘 같은 날은 꽤 기쁜 날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그런 말을 하냐고요? 바로 월급날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에게 월급이 들어오는 것만큼 신나고 행복한 날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가슴이 막 부풀어 오르거나 전율을 느낄 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월급이란 건 사실 하나의 보상입니다.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해 주어지는 응당의 대가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요. 일종의 보람이라고나 할까요? 매월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 날 때문에 우린 더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월급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도 곧잘 하곤 하지만, 솔직히 현실에선 오히려 돈 나고 사람 난 게 정설처럼 믿어지는 세상입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가장하자면 돈 없이 살 수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몇 년 전에 직장 동료분이 사석에서 월급을 두고 사이버 머니라고 지칭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그러더군요. 기껏 월급이라고 해서 들어와 봤자 뭐 하냐고 했습니다. 아무 표도 없이 죄다 빠져나가 버리니 허탈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모두가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기막힌 표현을 했을까 싶었으니까요.
통상적으로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상에서 존재하는 돈을 말합니다. 실제 현금으로는 교환이 불가능하나 사이버 상에서는 현금처럼 취급되고 적절한 가치만큼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바로 사이버 머니입니다.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됩니다. 예를 들어 5백만 원이라는 월급이 들어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월급 당일, 통장이나 인터넷 뱅킹 상에 찍힌 5,000,00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합니다. 한 달이 또 이렇게 지나갔구나, 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은 여기까지가 월급이 주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통장을 확인해 보면 가령 몇 십만 원만만 남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귀신같이 빠져나가는 다양한 명목의 돈이 처리되고 나면 남은 돈은 고작 그것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현금처럼 취급되고 일정한 가치만큼 사용은 가능하나, 실제 현금으로는 교환이 불가하더라는 겁니다.
숫자에 울고 웃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거라도 있으니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사이버 머니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그 돈이라도 없다면 온갖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아야 할 테니까요.
빠져나갈 거 다 빠진 뒤에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지 한 번 봐야겠습니다. 그 돈이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진짜 월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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