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는 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수업 시연을 하고 자체 스터디를 꾸준히 함으로써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자원봉사의 신뢰와 위상은 봉사자 스스로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부할 때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 송유정, 『다시, 학교에 갑니다』, 공동체, 20쪽
현직에서 25년째 아이들을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정년퇴직이 대략 11년 정도 남았고요. 저는 나름 겸손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어딜 가서든 누군가가 제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름을 말한 뒤에 꼭 뒤에 이런 토를 달곤 합니다.
“25년 차 현직 초등교사입니다.”
이 단순한 한 마디 속에 타인을 무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저 나름으로는 충분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거만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전문성’이라는 말에 크나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가끔 간과하곤 합니다. 그건 바로 전문성은 제가 내세운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타인에게서 그런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전문성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문성은 다음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듯, 특정 분야만 연구하거나 맡아서 해당 분야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질을 말합니다. 사전적인 정의만으로 보자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25년이나 가르쳤으니 제게도 나름의 전문성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든지도 모릅니다. 다만, 과연 한 가지의 일을 오래 했다고만 해서 전문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전문성을 갖추려면 이에 대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한 열정과 끈기를 지녀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속엔 한 가지 일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가 스스로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부할 때 그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라면,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저 같은 교사도 끊임없이 수업 기술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부할 때 교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위상은 교사의 전문성 때문에 높아지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공교육은 신뢰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문장을 보면서 나름 깊은 반성을 해 보게 됩니다. 과연 저는 25년 동안 얼마나 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 왔나 싶기 때문입니다. 그걸 매너리즘이라고 하나요? 25년이나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니 ‘척’하면 ‘척’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건지도 모릅니다. 굳이 깊이 있는 교재 연구나 지상 수업(수업 시연) 등을 통한 수업 기술 연마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에겐, 한 우물을 파는 사람에겐 그저 고개가 숙여지게 마련입니다. 그 긴 세월을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면서 이제 그걸 느끼다니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이제라도 그걸 느껴서 다행히 아닌가 싶습니다. 남은 11년 간의 교직 생활 동안 저 역시 제가 갖추어야 하는 전문성을 겸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