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2: 내가 몇 년 전에 쓴 글
앞선 글, ‘내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날’에 나왔던 그녀는 제가 군대에 가 있을 때 저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속칭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겁니다. 지금에 와 가타부타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그녀가 떠나가게 된 건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아무튼 일병을 달고 두어 달쯤 지난 뒤부터 그녀에게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눈치를 챘습니다. 그녀가 떠나갔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녀가 떠나간 뒤에 저는 휴가를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제게서 떠나갔고, 휴가를 나와도 함께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죄다 군대를 갔고요. 부대에 있을 때에도 상실감은 컸지만, 막상 휴가를 나와 있으니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늘 있던 그녀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전화번호도 알고 있고, 집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락할 수도 찾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이 저를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어슬렁어슬렁 한참을 배회했습니다. 제 발길이 닿는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마리의 개를 보았습니다. 온몸의 털이 약간 더러운 데가 있는 걸 보면 얼핏 봐도 유기견 같았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그 녀석에게 오라고 손짓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농담 조금 보태자면 앞발로 들고 일어서면 거의 제 몸집 만한 녀석이었는데도, 게다가 평소에 개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성향이었는데도 그 녀석에게 손짓했습니다. 그 큰 덩치에 속도 없는 것인지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제게 다가와 온몸을 비벼댔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 녀석을 당장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습니다. 만약 유기견이라면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녀석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촌스러운 이름을 서슴없이 붙였습니다.
“너는 이제부터 돌쇠다.”
제 말을 듣고는 있는 건지 녀석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연신 꼬리만 흔들어댔습니다. 그때 도대체 제게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떠오른 스토리는 대략 이랬습니다.
현실에서 아무런 낙이 없는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방황하다 유기견 한 마리를 만나게 되는데, 남자는 그 개에게 돌쇠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낙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어딘가에서 들었을 법한 스토리일 겁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어딘가에 출판할 것도 아니고, 공모전 등에 낸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단지 제 생애의 첫 소설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제가 이름을 붙여 준 ‘돌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떠오르는 표현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근처에 있던 문구점에 가서 메모지와 볼펜을 사 들고는 생각난 것들을 죄다 옮겨 적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적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돌쇠가 어딘가로 가고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3일을 끙끙 앓으며 제 처녀작을 완성했습니다. 다 써 놓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잘 써서가 아니었습니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에게 너무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 소설을 써 놓고도 그녀와의 실연에 대한 아픔을 꽤 많이 극복한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자세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들을 썼는지도 가물가물할 뿐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저의 처녀작인데 한참 지나 여기저기를 다 뒤져봐도 그 소설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컴퓨터가 한 번은 완전 먹통이 되어 돈을 주고 수리를 맡겼었는데, 그 와중에 사라진 듯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소설을 쓰긴 합니다만, 당시의 제 첫 소설은 도저히 눈 뜨고는 읽어 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분명 저의 처녀작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평생을 소장할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 잃어버리고 난 몇 년 후 다시 그 작품을 복원하려고 나름 노력해 봤지만, 이미 시간도 지났고 마음도 달라져 있던 탓인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그 첫 소설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결코 그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겐 처녀작이니까 말입니다. 그 소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