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Oct 29. 2024

노래 한 곡의 위력

주제 1: 10월의 마지막 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알 만한 유명한 노래의 첫 소절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의 MZ 세대들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최소한 40대 정도의 나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그런 노래라는 사실입니다. 부른 것만 쳐도 수십 혹은 수백 번은 될 것이고, 들은 것만 헤아려 봐도 족히 수천 번은 들었을 테니까요.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용 씨는 노래가 발표된 그 해,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인기 가요상과 속칭 가수왕으로 불리는 최고 인기 가수상을 휩쓸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1980년과 1981년, 그리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6년 간 가수왕이 조용필 씨였던 것을 감안하면 가수 이용 씨가 이 노래로 얼마나 큰 인기를 누렸는지 실감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1980년부터 1986년까지의 7년 동안 조용필 씨가 가수왕의 자리를 1982년에 딱 한 번 다른 가수에게 내줬는데 그 가수가 바로 이용 씨였다는 겁니다. 조용필 씨의 아성에 도전해서 타이틀을 따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엔 최고의 이슈 거리가 되었을 정도였고요.


이 노래가 발표된 해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42년 전인 1982년입니다. 때마침 그 해는 프로야구가 창단된 첫 해였습니다. 야구의 인기도 대단했지만, 이용 씨의 ‘잊혀진 계절’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해마다 10월 31일이 되면 전국의 어디를 가나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10월 31일이 있는 그 주간은 온통 이 노래만 들렸습니다. 그즈음이면 하루에도 족히 네다섯 번은 이 노래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못해도 30년은 넘게 듣다 보니 10월 31일이 다 되어간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제야 생각하곤 합니다.

“또, 저 노래야? 뭐야, 벌써 10월 31일이 다 되어 간다고?”

시간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 같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설마 했다가 깜짝 놀라곤 합니다. 1월 1일이 엊그제 같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냐며 뒷북치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요즘은 이 노래에 대한 인기가 조금은 누그러든 느낌입니다. 이제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뜻이겠지요. 함께 공감할 사람들이 줄었다는 의미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선 이 노래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과거라는 시간에 매몰되어 있는 구세대들은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마치 10월의 마지막 날을 넘길 수 없다는 듯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을 느끼곤 하는 모양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10월의 마지막날은 10월 30일의 다음날이고 11월 1일의 전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입니다. 그런데도 10월 31일은 마치 젊은 세대들이 화이트 데이나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는 것만큼이나 그 시대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 하는 날처럼 여겨집니다. 대중가요 가수 한 명과 그가 부른 노래가 그만큼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는 이 노래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노랫말처럼 10월의 마지막날에 우리가 연인과 헤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노랫말이 우리에게 주는 그 특유의 슬픈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기 때문일까요?


문득 이건 어쩌면 제야의 종소리 같은 효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1월 1일 0시가 되면 우리는 모두 지나간 해의 묵은 때를 털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제야 우리 앞에 펼쳐질 또 다른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건 지난해를 보람 있게 보내었건 혹은 그렇지 못했건 간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리에겐 연례행사처럼 인식되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이런 의미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10월 31일이 되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해의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의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초에 수립한 목표에 대해 얼마만 한 성과를 거두었는지, 아쉬운 점은 없는지, 그리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은 두 달 동안이라도 어떻게 보완해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점검해 본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각자가 내린 결론을 다음 날인 11월 1일부터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남은 두 달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년 중 열 달은 허겁지겁 보내고 말았더라도 남은 두 달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다짐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바로 그 신호탄이 가수 이용 씨의 '잊혀진 계절'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때가 10월 31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딜 가나 그렇게 들려오던 그 노래가 더는 들리지 않았는지 몇 년은 된 것 같습니다. 이젠 의식적으로 찾아서 듣지 않으면 그 노래를 듣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그 기억이 있는 한은 10월 31일만 되면, 10월의 마지막 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청승 아닌 청승을 떨 것 같기도 합니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제는 잊혀지고 있는 그 노래를 꺼내 들고, '10월의 마지막 밤'을 음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영상 출처: 유튜브

매거진의 이전글 저의 처녀작(첫 소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