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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31. 2024

시간의 함정

주제 2: 미래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건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습니다. 이들 중에서 공간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는 없다고 해도 주거공간이나 직장 등을 옮기는 것과 같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의 변화를 주게 되면 일정 부분에서 우리 삶의 양태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공간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영역에 들어서면 그 어떤 노력이나 시도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시간은 그 어느 누구도 부분적인 변화조차 줄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해도, 혹은 연로한 누군가가 시간이 더디게 흘러 조금 더 살고 싶다고 해도, 스물네 시간이라는 하루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길이로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지나가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일들은 되풀이됩니다. 언덕 아래에서 끊임없이 무거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여전히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린 시간의 굴레에 늘 갇혀 사는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이 굴레가 싫다고 해서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니까요.


이쯤에서 하나의 유명한 표현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건 바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시간 속으로 고스란히 끌고 들어와 보면 정반대의 논리로 성립합니다. 즉 사람 나고 시간이 난 게 아니라 시간 나고 사람이 났다는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있건 없건 간에 시간은 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갑니다. 그 말은 곧 우리 각자가 죽어 사라진다고 해도 시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안의 시간만 정지할 뿐입니다. 우리에게서 멈춘 그 시간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시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셈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시간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막 통과하고 있는 '현재'의 길이가 가장 짧습니다. 나머지 둘의 경우엔 명백히 사람마다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저희 아들 같으면 '미래'가 '과거'보다도 확연히 길 테지만, 제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보다 지금껏 살아온 '과거'가 훨씬 더 깁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걸론부터 말하자면 '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말장난과도 같이 들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미래'도 우리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우리의 '과거'는 얼마든지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에 젖어 있지만 말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철저히 대비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곧잘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많던 순간순간의 '현재'들은 기어이 '과거'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들도 모두 순식간에 '현재'가 되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내 '과거'속에 묻혀 버립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쥐고 아놀드 슈왈 제네거가 열연을 펼친 유명한 영화 '터미네이터'에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미래'는 없습니다. 그건 이미 사라져 버린,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에서 축적된 생각들이 미래의 상을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결국 '과거'밖에 없는 셈이 됩니다. 애초에 우리에게 '미래'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 '미래'는 이렇게 한 줄 한 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이미 '과거'라는 적재함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운운하는 그 순간에 이미 '현재'를 거쳐 '과거'가 되어 버린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며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힌 채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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