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05. 2024

꼭 듣고 싶어.

주제 1: 내가 너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

생각해 보니 너라는 사람을 만난 그 순간부터 난, 지금껏 네 손을 놓지 못했어. 어느 정도 친밀감이 생긴 뒤부터 난 농담처럼 얘기했어.

"영은아! 난 언제든 어디에 있든 네 손을 잡고 있을 거야. 결코 넌 넘어질 일이 없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그러면 곧잘 널 잡은 내 손이 보이지 않는다며 넌 미소를 지었어. 난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라고 했고.


맞아. 그때부터 난 단 한 번도 네 손을 놓은 적이 없어. 네가 이젠 놔도 된다고 하지 않는 한은 내가 먼저 그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거야.


좀 식상하면서도 유치한 표현을 쓸까 해. 28년 전 내 가슴에 불을 질러놓은 네가, 내 곁에서 떠나던 25년 전 그날까지 줄곧 넌 내 머리와 가슴속에 자리 잡았어. 흔히 그런 말을 하지. 남자의 마음속엔 여러 개의 방이 있다고 말이야. 아니야, 내겐 딱 하나의 방이 있을 뿐이야. 물론 그 방엔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네가 살아가고 있어.


아직도 넌 그날 내게서 왜 떠나갔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어. 당연히 싫었으니 떠났겠지만, 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못했어. 너만 바라보던 날 기어이 뿌리치고 가야만 하는 그 필연적인 이유가 궁금했어. 뭐랄까, 내겐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는 기분이었어.


15년 전쯤 길에서 널 마주쳤을 때도 난 그걸 꼭 물어보고 싶었어. 그런데 묻지 못했어. 마치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던 학교 선후배가 십수 년 만에 만나 반갑다는 것 외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는 네게 차마 물어볼 수 없었어. 네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빼고는 안 해 본 것이 없던 내가, 그런 너의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말이야. 다음으로 미뤄야 했어. 언젠가는 내게 한 번의 기회는 올 거라고 믿었어.


그로부터 11년쯤 지난 3년 전 다시 길에서 널 보았어. 맞아,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파란색 신호등이 깜박거리며 빨간색으로 바뀔 찰나에 이미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린 네 뒷모습을 보았거든.


그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 또 몇 년 혹은 십수 년을 기다리면 한 번은 더 기회가 올 거라고 말이야.


네겐 그렇지 않을 테지만, 가끔 넌 내 꿈에 나타나곤 해. 그런다고 해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냐. 그저 널 대면한 곳에서 또박또박 물어보고 있을 뿐이야. 왜 내게서 떠나갔냐고 말이야.


넌 그때마다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어. 그러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곤 해. 꿈속에서 네 얘기를 듣고 나는 널 이해하지만, 꿈 밖에 있던 나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어.


아마도 그래서 난 네 손을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친구 녀석은 내게 그런 말을 했어. 지금에 와 그 이유를 알아본들 뭘 하겠냐고 말이야.


그런데 영은아, 이게 내 지나친 욕심일까?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언젠가는 네게서 그 얘기를 듣고 싶어.


실컷 잘 있다가 문득 너에 대한 글을 썼으니, 오늘밤 꿈에 또 네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늘 그랬던 것처럼 난 오늘도 너에게 물어볼 거야.


최면을 걸어본다면 모를까, 꿈에서 한 얘기를 맨 정신으로는 끝내 알아내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내 방 속에 너만을 위한 공간을 비워둔 채 난 언제나 다시 너와 만날 날만을 기다릴 거야.


영은아, 이젠 알겠니? 왜 내가 네 손을 놓지 못하는지를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의 함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