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2: 친구
저를 스쳐간 그 많은 동갑내기들 중에 제 주변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그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련 없이 잘라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어떤 도움도 안 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가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두 번 망설이지 않고 끊어냈습니다. 그 결과 31년 된 친구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만나왔던 친구가 아닙니다. 교대에 진학해서 알게 된 친구였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녀석과는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그 녀석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정리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도 옆에 두면 저도 한 번씩 도움을 받고, 저 역시 그들에게 종종 도움이 되는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정리를 하고 말았으니 결정적일 때 자기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면 친구랍시고 제가 불러낼 만한 친구가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후회할 작정이었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길지도 않은 인생에 서로에게 배울 점이 없는 관계를 그저 조금 더 잘 안다는 이유 하나로 지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 역시도 가끔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혹은 친구를 만나서 회포라도 풀고 싶을 때 그 친구가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연락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조용히 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 게다가 요즘의 트렌드가 홀로 지내거나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때의 제 판단이나 행동도 가히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야! 너는 최소한 나보다는 하루만 더 살다가 가라."
저나 제 친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몰라도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까지 했습니다. 친구가 웃더군요.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냐고 하면서도 눈빛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친구가 없었으면 그런 말까지 하나 싶었을 겁니다.
이제 이 나이에 더 이상의 친구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만나고 있는 그 친구와 함께 죽는 날까지 희로애락을 같이 할 생각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엔가 그 친구마저 제 곁을 떠난다면 그건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