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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7. 2024

유일한 친구

주제 2: 친구

저는 친구가 없습니다. 여사친은 더더욱 없고요. 그런데 이런 고백을 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53년째 살고 있으면서 친구가 없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힘주어 말하자면, 저는 친구가 없습니다. 딱 한 명만 있을 뿐입니다. 뭐, 그럴 일이야 없을 테지만, 그 친구가 만약 먼저 죽는 일이 생긴다면 저는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친구도 두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제 아내도 저와 결혼한 뒤에 그걸 가장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30여 년을 살아오다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하다 못해 네다섯 명의 친구쯤은 결혼식에 올 만한데, 정말이지 제 결혼식에 제 친구의 자격으로 온 사람은 그 녀석뿐입니다. 처음에 아내는 제가 성격파탄자이거나 그게 아니라고 해도 성격상에 꽤 문제가 많은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한 걸 후회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이유로 후회합니다만, 아무튼 함께 살아보니 크게 문제 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친구가 없는지 늘 궁금했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가 자신의 신변을 서서히 정리하듯 저는 살아오면서 지나칠 정도로 인간관계에 있어 일종의 결벽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든 후배든, 심지어 친구든 저는 가리지 않고 제 주변에서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마치 유력한 정치인이 자신을 정적을 제거하기라도 하듯 남김없이 연을 끊어 버렸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미래의 제 모습을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 아니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정리를 해 버리면 어느 순간에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를 스쳐간 그 많은 동갑내기들 중에 제 주변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그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련 없이 잘라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어떤 도움도 안 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가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두 번 망설이지 않고 끊어냈습니다. 그 결과 31년 된 친구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만나왔던 친구가 아닙니다. 교대에 진학해서 알게 된 친구였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녀석과는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그 녀석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정리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도 옆에 두면 저도 한 번씩 도움을 받고, 저 역시 그들에게 종종 도움이 되는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정리를 하고 말았으니 결정적일 때 자기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면 친구랍시고 제가 불러낼 만한 친구가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후회할 작정이었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길지도 않은 인생에 서로에게 배울 점이 없는 관계를 그저 조금 더 잘 안다는 이유 하나로 지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 역시도 가끔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혹은 친구를 만나서 회포라도 풀고 싶을 때 그 친구가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연락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조용히 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 게다가 요즘의 트렌드가 홀로 지내거나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때의 제 판단이나 행동도 가히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야! 너는 최소한 나보다는 하루만 더 살다가 가라."

저나 제 친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몰라도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까지 했습니다. 친구가 웃더군요.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냐고 하면서도 눈빛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친구가 없었으면 그런 말까지 하나 싶었을 겁니다.


이제 이 나이에 더 이상의 친구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만나고 있는 그 친구와 함께 죽는 날까지 희로애락을 같이 할 생각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엔가 그 친구마저 제 곁을 떠난다면 그건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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